우주선을 타고 지구 밖까지 나가보진 않았지만, 비행기를 타고 에베레스트 이상만 올라 가도 인간 세상은 멀리 있는 은총의 섬을 연상시킨다. 그런데 왜 지상으로 가까이 착륙할수록 그곳은 은총의 별이 아니라 지옥처럼 느껴질까.나는 세번째 시집 「영혼의 북쪽」(문학과지성사 발행)에서 「삶이란 게 지구 위로 온 휴가 같은 것」이라고 썼다. 최첨단 우주선을 타고 지구 밖으로 헤엄쳐도 아직까진 지구 같은 「우주의 샘물」이 없는 모양이다. 지금까지 인류는 지구 위에서 삶(휴가)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이게 휴가야? 돈만 되면 지구를 우주의 폐차장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이 무한경쟁의, 지구 착취의 싹쓸이 세계관이 범람하는 이게 지구 위로 휴가 온 인간의 역사야?
여태껏 「지구는 우주의 오아시스」였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지구」는 내 시의 근원이며 내 삶의 철학이다. 내 인생이 나의 종교라면 내 인생이 펼쳐지는 지구 역시 나의 종교이다. 「지구 여관에 깃들여 잠을 청하는 사람들이 만원이다. 방이 없어 떠나는 새·파도·사탕단풍나무·무지개·반딧불이…」 너무도 많다. 왜 우리는 지구라는 별에 인간뿐만 아니라 수많은 동식물들, 바다, 바람, 심지어 눈물조차도 휴가와 살고 있다고 절실하게 생각하지 않는걸까!
이번 시집은 이런 가녀린 지구를 노래한 시집이며, 지구 위에서 생과 사를 함께 하는 수많은 동식물의 운명을 노래한 시집이며, 지구 위에서 「안하무자연(眼下無自然)」으로 살고 있는 인간을 염려한 시집이다. 「아무리 볼품없고 하찮은 한 그루 나무일지라도/어떤 위대한 인간보다 낫다」 「나무는 따뜻한 無限(무한)이다」라고 쓸 때 내 심정은 어땠을까. 나는 그 반대로 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따뜻한 無限이다」라고.
인간이 지구의 오염과 절망을 생산하는 동물이 아니라 희망이 되는 날이 올까. 앞으로의 인류 문명은 기계조차도 자연스러워야 하며, 지구를 염려하지 않는 문명은 문명이 아니다. 이제 인간은 물과 불과 공기와 대지의 문명을 섬겨야 한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문제는 인간」이라면 답도 인간이다. 한 행성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는 힘을 지닌 인류는 지금 어디로 자신의 문명을 움직여야 할지 숙고할 때다./시인·89년 「문예중앙」 신인상으로 등단·시집 「나무들은 폭포처럼 타오르다」 「바다로 가는 서른세번째 길」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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