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수 김영환산업화 과정에서 고도의 기술발달은 인간이 객체로 전락하는 기술지배 현상을 가져왔다. 더불어 대량생산에 기초한 물질문명은 인간을 상품, 물질가치로 인식케 하였으며 산업화에 수반된 관료제는 문서에 의한 간접 업무처리로 인간적 접촉을 차단하였다. 정보화 과정에서도 독립된 정보매체의 사용은 개개인을 고립시킨다. 이러한 비인간화 현상은 개인주의의 확산과 맞물려 사람들에게 무감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칼 포퍼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 중에서 친밀한 인간적 접촉이 배제된 익명과 고독-비인간화 현상이 불행을 야기한다고 지적한다. 본래적인 사회적 욕구의 충족 없이는 인간이 행복, 나아가 자아를 찾을 수 없다는 것. 이는 「인간은 인간 사이에서만 인간이다」라는 피히테의 주장과 궤를 같이하여 인간다움과 괴리된 현실을 개선해야 할 필요성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련의 비인간화 현상을 극복하기 위한 실천적 방안과 노력은 무엇인가? 우선 각 개인은 자신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예술이건 문학활동이건 자신만의 영역을 확보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의미를 갖는 타인들과 관계를 맺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는 김춘수의 「꽃」이 시사하듯 소외와 고독을 벗어날 수 있는 시작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인식론적 전환, 즉 새로운 인간관계 방식에 대한 이해가 요구된다. 사이버 공간의 동호회나 e-mail교환은 직접 접촉이 아니지만, 상호 신뢰와 책임을 부여한다면 깊이 있는 관계가 이뤄질 수 있다. 즉, 이러한 새로운 문화를 긍정한다면 쌍방향 정보매체 등 뉴미디어를 이용한 다양한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점차 관료제를 대신하여 팀워크제 같은 공동체적 조직을 통해 인간적 접촉을 활성화해야 한다. 여기서 사랑의 가치를 배양하는 일이 요구되는데 보편적, 항구적인 사랑의 가치를 통해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도모할 수 있는 까닭이다. 이를 위해 가정의 정서적 유대기능-사랑의 기초교육-이 강조된다. 이러한 노력들을 하더라도 사회의 변화와 구조에 기인한 비인간화 현상이 완전히 소멸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 문제를 자각하고 고민하는 노력의 과정 그것이야말로 인간다운 삶에 이르는 의미있는 방안임을 자명한 진리이다.
■우수1 박혜란
핵무기를 이용한 우주 전쟁, 만능 로봇. 보다 효과적으로 승리를 거두는 무혈전쟁… 미래소설의 공통적인 소재들이다. 현재 세계는 그러한 약속된 미래를 위해 부지런히 나아가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잊기 쉬운 소재가 또 하나 있다. 인간과 인간의 실제적인 접촉이 거의 사라지는 사회, 바로 그것이다. 이런 비간화 현상은 현대사회에서도 이미 나타났다. 다른 인간과 관계를 이루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인간의 본성인데, 과연 이러한 변화는 옳은 것일까?
카알 포퍼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닫힌사회에서 열린 사회로의 변화를 서술하고 있다. 그것은 인류사에서 가히 혁명이라 칭해질 가치가 있는 엄청난 변화이다. 또한 한 개인의 가치는 그리 중요하게 평가되지 않는 농업사회에서 공업사회로 넘어오면서 이런 현상이 조금씩 나타났다. 전래의 공동체 생활이 점차 사라졌고, 반대로 기계가 한 개인의 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 정보화가 가져올 열린사회에서는 이 비인간화가 더 심해진다. 굳이 남과 관계를 맺지 않아도 당장의 내 생활에는 지장이 없다. 카알 포퍼는 이런사회를 「유기체적인 특성이란 없는 비인간적이고 추상적인 사회」라고 정의한다.
문제는 사회는 열린사회로 바뀌고 있지만 인간은 과거 닫힌사회에서의 상태 그대로라는 점에 있다. 인간은 과거의 생물학적인 특성은 그대로 지니고 있다. 인류의 사회가 이만큼 발달하게 된 첫번째 이유가 무엇인가. 인간은 종족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려고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특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인간은 열린사회에 적응하기 힘들다.
비인간화.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정과 유대관계의 회복이다. 전통사회의 정적 요소가 강한 동양사회는 그렇지 않은 서양에 비해 구성원의 일탈 정도가 작아 요즈음은 서양에서도 동양의 인간적인 정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개인과 개인의 가장 원초적인 관계는 기계가 대신할 수 없다.
기계와 과학의 발달이 인간에게 풍요와 편리함을 줄 것이라는 사실은 확실하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인간을 기계처럼 만드는 현상은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다른 인간과 동질감을 느끼고 인간적인 만남을 갖는 것, 그리고 어떤 정적 공동체에의 소속감, 그것은 열린사회에서도 잊혀져서는 안 될 본성이다.
■우수2 김석진
전통적 윤리사상이 지배했던 과거사회와는 달리 현대는 과학문명이 지배하는 사회이다.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산업화와 정보화로 이어졌고 이로 말미암아 인간은 육체적으로 보다 편리한 생활을 영위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과학발전의 이면에는 산업화로 말미암아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기술지배현상」과 정보화로 말미암아 친밀한 인간적 접촉을 갖지 못하게 하고 고립화시키는 「인간소외」현상이 빚어졌다. 결국 산업화와 정보화는 「비인간화」 현상을 초래하여 인간의 삶의 질을 떨어뜨렸다.
이처럼 현대과학이 인간의 정신적 문제까지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반성하고자 카알 포퍼는 『서구문화가 그리스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이야기를 할 때 우리는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깨달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즉 서구문화를 상징하는 현대과학은 그리스를 상징하는 전통윤리를 뒤로 한 채 과학기술의 발전에만 치중하여 오늘날의 「비인간화」현상을 초래한 것이다. 일찍이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중용」을 강조했다. 따라서 무분별한 과학기술의 발전을 지양하고 전통윤리와의 조화를 통해 「비인간화」 현상을 극복해야 한다.
또한 인간의 의지로써 「비인간화」현상을 극복해야 한다. 인간이 과학문명에 의존하여 자주성과 주체성을 상실할 것이 아니라 이를 이용하여 인간의 자유의지를 마음껏 펼쳐야 한다. 통신상에서 결성된 「붉은악마」는 한국축구의 붐을 일으키는 데 큰 기여를 했고 공정한 선거와 올바른 정치를 주장하는 시민운동은 인터넷을 통해 더욱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처럼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도 인간이 과학기술을 이용하여 주체성과 자유의지를 발휘한다면 과거사회보다 더욱 인간적인 접촉을 할 수 있음음 물론이요, 「비인간화」현상은 극복될 것이다.
인간의 힘과 노력은 고대철학에서부터 현대과학에 이르기까지 눈부신 발전을 이루어냈다. 그러나 현대과학의 무분별한 발전으로 인간이 소외되고 고립되는 「비인간화」현상이 초래되었다. 그러나 현대과학과 전통윤리의 조화 속에 「중용」을 되찾고 인간의 의지와 주체의식으로 「비인간화」현상을 극복한다면 인간은 육체적, 정신적인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논술강평] 화목등 실천방법 구체제시 뛰어나
손동현
(孫東鉉·성균관대 교수)
철학자 카알 포퍼가 제시하고 있는 열린 사회란 한 마디로 말해 「합리화」된 사회이다. 사회의 성원 각자가 자신의 합리적 사유를 통해 자신의 행위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사회가 곧 열린 사회이다. 이에 비해 닫힌 사회란 구성원들이 부족적 혈통과 같은 생물학적인 유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또는 마술적 미신이나 계급적 이데올로기와 같은 비합리적 교조에 맹종함으로써, 사회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비합리적 통제에 따라 행동하는 사회이다.
포퍼는 서양 역사상 최초로 인간을 이성적 사유의 주체로 파악한 그리스인들이 바로 이러한 닫힌 사회에서 합리적인 열린 사회로 이행해간 사람들이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물론 서양 사회에서도 열린 사회에로의 이행을 가로막는 사상과 체제가 있었기 때문에 특히 근대 이후 닫힌 사회에서 열린 사회에로의 이행이 본격화된 이후에도 역사적인 반동적 후퇴가 있었음을 그는 비판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닫힌 사회에서 열린 사회로 이행해 가는 것은 이제 합리적 사유의 과실을 맛보기 시작한 인류에게 있어 거스를 수 없는 역사의 진행과정이다.
포퍼가 이렇듯 합리적 사유의 가치를 높이 평가해 열린 사회를 찬양한 것은 전체주의적 통제와 억압이 인간의 개인적 자율성을 말살시키고 그와 더불어 사회를 비인간적 야만성에 내맡기게 되는 점을 비판하고자 함에 있었다. 사회 성원 각자가 자율적으로 합리적 사유를 통해 자신의 행동을 결정할 때 인간적 가치의 실현이 보장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합리적 사유의 본성에는 또 다른 비인간적 요소가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합리적 사유는 인간이 자연을 대할 때에든 다른 인간을 대할 때에든 그 관계에서 감성적이거나 정감적인 요소는 가능한 한 배제하고 오직 논리적으로 잘 설명될 수 있는 무모순적인 것만을 허용하고자 한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인간의 삶에 있어 바로 이러한 비합리적인 요소가 더 원초적이고 근원적일 수가 있는 것이다. 혈연적인 유대감이나 정감적인 동질감 등이 사회적 결속을 더 공고히 해주는 요소임을 부인하기 어렵고 신비스런 신앙체험이나 예술적 직관이 오히려 인간의 인간다운 품위를 더 격상시켜 주는 가치 있는 것이 될 수도 있다.
합리적 사유가 인간의 삶에 자율성과 유용성을 가져다주는 긍정적 요인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반대급부로 합리적 사유로 인해 인간이 상실하는 것 또한 가벼이 볼 수만은 없는 것이다. 제시문에서도 언급되었듯이 합리적 사유의 추상화 과정은 인간의 삶에서 직접적 체험의 영역을 위축시키거나 배제시킴으로써 인간에게 불행감을 안겨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번 주 최우수작으로는 비인간화의 극복과 관련해 자아의 의미 추구, 공동체 안에서의 인간적 접촉, 사랑의 실현, 가정의 화목 등 구체적이고도 중요한 실천 방도를 언급한 김영환(포항제철고)의 글을 뽑는다. 그러나 그는 새로운 정보매체의 사용이 개개인을 고립시킨다고 진단하면서도 이-메일 등 사이버 공간에서의 접촉을 통해서도 깊은 인간관계를 도모할 수 있다고 제안하는데, 그의 생각에 어긋남이 없으려면, 여기에는 다른 전제가 더 보충되어야할 것이다.
박혜란(서울외고)의 글은 비인간화를 극복하는 것에 대해서는 정감적 유대관계의 회복을 간단히 언급하는 것에 그쳐 아쉬움이 크지만, 주제를 잘 이해하고 이를 풀어 쓴 지적 수준이 돋보여 우수작 1로 선정한다. 출제자의 의도를 존중하여 글의 내용과 구성에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면, 훨씬 더 나은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우수작 2로는 김석진(면목고)의 글을 선정하는데, 이 글도 박혜란의 글처럼 비인간화의 극복에 관해 구체적이고 내용있는 논술을 하고 있지 않다.
구성상의 짜임새는 균형이 잡혀 있어 좋은 편이다. 그러나 본론을 담고 있는 가운데 두 단락 중 앞의 것은 핵심을 벗어났을뿐 아니라 제시문 이해에도 문제가 있으며(그리스로부터 비인간화의 근원이 되는 합리적 사유가 유래한다는 점을 잘못 이해하고 있음), 「과학기술을 이용해 주체성과 자유의지를 발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 다음 단락에서도 과연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등에 대한 설명이 결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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