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9년 7월14일 파리의 바스티유감옥이 시민들에게 함락되었을 때 베르사유궁전에서 이 소식을 전해들은 루이16세가 물었다.『폭동인가?』
이에 라로슈푸코-리앙쿠르공이 대답했다.
『아닙니다, 폐하. 혁명입니다.』
지금 총선연대 등이 여기저기서 들고 일어나는 낙천운동은 불법적이라서 폭동일 것인가. 그러나 폭동이 아니다. 혁명이다. 혁명의 시작이다.
이 운동이 4·13총선의 부적격 후보에 대한 심판이라서 선거혁명이기만 할 것인가. 아니다. 사회혁명이다. 사회혁명의 시작이다.
역시 2000년이다. 새 세기요 새 천년이다. 우리는 아무 선언 하나 없이 2000년을 맞이하고 있었다. 다행히 새해 벽두의 이 바람은 대전환의 예고요 새로운 시작의 신호다.
대관절 「2000년 총선시민연대」등 시민단체는 누구인가. 우리 국민은 이들에게 「살생부」의 작성을 위임한 적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 명단이 무의미한 것인가. 혁명은 국민투표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시민단체가 얼마만큼 국민의 대표성이 있고 그 명단이 얼마만큼 공정성이 있느냐에 의문이 있다손 치더라도 적어도 이들의 혁명정신에는 대표성이 있고 정당성이 있다.
사실 명단의 형평성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모두 옳다. 명단 선정의 가장 큰 기준이 부정부패와 선거부정이라는데, 과거 정치자금의 부정한 관행을 문제삼는다면 정치인중 호명안될 사람이 누구이겠는가. 선거법 위반을 문제삼는다면 현역의원중 크든 작든 위반안하고 당선된 사람이 또 누구이겠는가. 왜 저사람은 빠졌느냐고 서로 손가락질 당하는 의원들을 다 모으면 국회의사당은 오랜만에 결석자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 때문에 혁명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명단의 거명은 범례(凡例)일 뿐이다. 예시된 몇몇 정치인이나 갈아치우고 호명에서 용케 빠진 사람들에게 면죄부나 주자는 것이 혁명정신은 아니다.
이 시민운동의 바람을 단순한 선거혁명으로만 간주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사회혁명이라 할 수 없다.
이 땅에 혁명이 고대된 것은 미적거리기만 하는 개혁 때문이요, 그 중에서도 맨먼저 부정부패의 일소를 위해서다. 개혁정치를 법을 위반하는 시민단체에 맡겨버린 정부도 무책임하지만, 5·16의 「혁명공약」으로도 완수 못하고 지난 40년동안 오히려 더 쌓여만 온 부정부패라면 이제 군사혁명 아닌 시민혁명 밖에 기대할 데가 없다.
개혁의 대상이 물론 부정부패만인 것도 아니고 또한 부정부패가 정치인의 전유물인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모든 구악은 부정부패가 그 뿌리요 모든 개혁의 걸림돌은 정치권이다. 혁명의 표적이 정치권인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정치권을 정화할 가장 좋은 기회는 선거다. 그래서 선거가 이용되고 선거혁명이 부르짖어지고 있는 것이다. 선거는 지금까지 정치권의 부정부패의 씨앗이었다.
우리나라의 모든 구악은 앙시앵 레짐(프랑스 대혁명 이전의 구체제)이다. 부정부패 등 구시대적 악습이나 악태뿐 아니라 전세기적 의식과 사고방식을 혁명으로 일신해야 한다. 정치권 뿐 아니라 공직자나 일반 국민도 새롭게 재생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번 시민운동은 시민 자신의 자성운동으로까지 이어져야 혁명이 된다.
선거만 해도 그렇다. 시민단체가 아무리 낙천운동을 하고 낙선운동을 벌여도 유권자인 국민 자신이 각성하지 않으면 무위다. 시민단체가 유권자 대표라는데 낙천 대상자를 국회의원으로 뽑은 것도 유권자다. 지금까지 선거가 타락한 것은 유권자의 책임도 크다. 시민단체는 국민주권을 행사하겠다지만 낙선운동만 할 것이 아니라 주권자의 구겨진 표의 행사도 감시해야 한다. 아무리 적격자라도 부정하게 당선되면 그는 또 부적격자가 된다. 유권자의 힘으로 깨끗한 선거가 성공할 때 비로소 이 시민운동도 성공한다.
선거혁명 한가지만 먼저 완수하면 모든 개혁은 뒤따라 달성될 수 있다. 그래서 이른바 한국병이 완치될 때 혁명은 완성된다.
2000년과 함께 시작되는 총선은 나라의 구원이다. 우리는 역시 희망이 있는 민족이요 가망이 있는 나라다. /김성우 본사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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