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박두] 바이센테니얼 맨모든 생명체는 시간의 유한성과 흐름에 순종한다. 인간은 그것을 「자연의 이치」라 부른다. 조립과정의 실수로 감정과 지능을 가진 가정용 로봇으로, 2005년에 태어난 앤드류(로빈 윌리엄스)는 인간이 되고 싶어했다. 그의 명석한 두뇌와 과학의 힘, 주인 마틴(샘 닐)의 배려로 그는 차츰 인간이 돼 간다. 조각가로 돈을 벌어 통장을 개설하고, 딱딱한 강철 피부는 말랑말랑한 인조피부로 바꾼다. 급기야 인간의 얼굴과 표정, 인공심장에 성기능까지 갖게 된다.
그렇다고 인간일 수는 없다. 시간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면 물건일 뿐이다. 200년을 그렇게 인간이 되고자 발버둥쳤지만 「시간」이란 덫에 걸려 「It」로 불리워져야 하는 앤드류. 마지막 스스로 시간의 무한성을 포기하고 죽음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세상은 그를 가장 오래 산 「Him」이라고 부른다. 「바이센테니얼 맨(Bicentennial Man·200년 인간)」은 인간에 대한 경배이다. 영원하고 완벽한 기계보다는 유한하고 모순 덩어리인 인간. 그 불완전한 개체에 대한 찬가이다. 그 모순과 유한성이란 신의 섭리에 거역하며 영생을 꿈꾸는 인간들에 대한 일종의 경종이다.
「미세스 다웃파이어」의 감독 크리스 콜럼버스와 주연 로빈 윌리엄스는 아이작 아시모프의 동명 SF소설을 빌어 따뜻한 한 편의 휴먼드라마, 가족드라마를 만들어 냈다. 가발과 짙은 화장의 여장남자 가정부 미세스 다웃파이어로 뭉클한 부정(父情)을 보였던 로빈 윌리엄스. 철갑옷에 강철 가면을 썼지만 여전히 아이들을 사랑하는 휴머니스트인 그는 가족으로의 편입, 그속에서 자신의 존재의미를 갈구한다. 로빈 윌리엄스가 아니면 도저히 불가능한 재치와 갖가지 해프닝이 웃음과 슬픔과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그 피에로에게 마음을 빼앗겨야 한다. 과학적 상상력 보다는 만화적 상상력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만 중반 이후 앤드류가 인간으로 변해가는 긴 시간 동안의 지루함과 비약, 감상적 결말까지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테니까. 눈높이부터 맞추는 것이 더 없이 중요한 영화이다. 29일 개봉. 오락성★★★☆ 예술성★★★☆
이대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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