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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차가 익는 비취빛 청자의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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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차가 익는 비취빛 청자의땅

입력
2000.0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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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강진만은 호수 같은 바다이다. 무가 뽑힌 듯 뻥 뚫린 내륙 깊숙이 남해의 바닷물이 들어와 있고 입구는 완도와 고금도가 마개처럼 덮고 있다. 양 옆으로는 소백산맥의 끝줄기가 점점 야트막해지면서 바다로 빠진다. 웬만큼 바람이 불어도 파도가 없다.순한 바다와 편한 산으로 둘러쳐진 풍경에는 「평화」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사람들도 그 모습을 닮아서 옛부터 이 곳의 인심을 호남 제일로 쳤다.

넉넉한 마음 속에서 문화도 깊어가는 법. 만을 둘러싸고 있는 육지에는 문화탐사를 할만한 곳이 많다. 가족과 함께 떠나는 오붓한 답사여행에 제격이다. 강진군 스스로도 「남도 답사의 1번지」라고 자랑한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은 강진에서 18년을 살았다. 1801년 신유사옥의 여파로 겨우 목숨만 부지해 이 곳에 유배됐고 해남 윤씨 일가가 만덕산 기슭에 작은 초당을 지어주기 전까지 동문 밖 주막에서 8년을 머물렀다.

그 초당이 다산의 지식발전소인 다산초당이다. 다산은 이 곳에 들어 『이제야 생각할 겨를을 얻었다』며 맹렬하게 저술과 후학양성에 힘썼다. 「목민심서」를 비롯한 500여권의 책이 초당에서 생활한 10년간 쓰여졌다.

초당의 좌우측에는 제자들이 머물던 동암과 서암이 있고, 20여㎙ 거리의 절벽 위에는 천일각(天一閣)이 지어져 있다. 천일각에서의 조망이 시원하다.

발아래 고요한 강진만에는 봉긋하게 무인도(죽도)가 솟아 있고, 멀리 부용산과 천태산의 돌봉우리가 희미하게 다가온다. 다산이 고향(경기 남양주시 능내리)을 그리며 상념에 잠겼던 곳이다.

초당은 차문화가 비롯된 곳이기도 하다. 다산은 이웃 백련사의 혜장스님과 교유하면서 차에 심취했다. 초당 옆에 직접 마르지 않는 샘(약천)을 팠고, 앞뜰에 솔방울을 지펴 찻물을 끓일 수 있는 널찍한 돌(다조)을 옮겨 놓았다.

약천은 여전히 마르지 않고 있으며 다조에는 불을 놓았던 흔적이 역력하다. 대나무, 향나무, 동백나무가 빽빽한 이 곳에서 차를 마시며 그는 국산차를 예찬하는 「동다기」를 썼다. 다산사업소(0638-432-5460)

강진의 다른 이름은 청자골. 통일신라 후기부터 고려말까지 500여년간 청자가 만들어진 곳이다. 다산초당에서 강진만 건너편의 칠량면 삼흥리에 사적 제68호인 대규모 도요지가 있다.

1997년 강진청자자료박물관이 도요지 인근 대구면에 문을 열었고, 청자와 관련한 각종 시설이 들어서 거대한 청자촌을 이루고 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문을 여는 박물관에는 3만여 개의 청자파편, 가마터 등이 보존·전시되고 있다. 고려청자사업소(432-3225)

강진읍 한가운데에 있는 시인 영랑 김윤식(1903~1950)의 생가도 들러볼만한 곳.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낙향한 영랑은 자신이 태어난 이 곳에서 60여 편의 시를 남겼다.

1948년 그가 서울로 떠난 후 몇 차례 주인이 바뀌었는데 1985년 강진군에서 매입해 가족들의 고증을 얻어 깔끔하게 복원했다. 마당에 모란이 많이 심어져 있는 이 고즈넉한 집에서는 요즘 보수공사의 마무리가 한창이다.

강진에는 4가지의 천연기념물이 있다. 푸조나무(35호) 비자나무(39호) 백련사 동백림(151호) 까막섬 상록수림(172호)등이다. 까막섬이 특히 매력적이다. 강진의 남쪽 끝 미량리 포구에서 200여㎙ 떨어져 있는데 후박나무, 팽나무, 쥐똥나무, 초피나무등 수십 종의 활엽수가 엉켜 있어 거의 검은 색으로 보인다. 썰물 때에는 포구에서 걸어서 들어갈 수 있다.

강진=권오현기자

koh@hk.co.kr

■[차창밖의 풍경] 섬진강 변남로

지리산을 감아 내리던 섬진강은 전남 구례를 거쳐 화개천과 만나면서 호남과 영남의 경계를 가르며 바다로 흐른다.

섬진강의 아름다움에 푹 빠질 수 있는 구례에서 경남 하동까지의 강변길(약 36㎞)은 남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드라이브코스로 꼽힌다. 주 도로는 강변북로인 19번 국도. 길의 상태가 좋을 뿐더러 연곡사, 쌍계사, 고소성, 취간정등 지리산의 남쪽 명소가 모두 이 길과 닿아있다.

봄소식이 전해지면 이 길은 몸살을 앓는다. 산수유, 매화, 벚꽃이 차례로 만개하고 이 기간의 휴일에는 거의 주차장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길을 넓히는 중이다. 새로 만들어진 높은 제방이 곳곳에서 강으로의 시야를 가린다.

섬진강의 모습을 제대로 보려면 강변남로인 861번 지방도로가 낫다. 진입로가 복잡하고 노면상태가 19번 국도에 못 미치지만 강과 더욱 가깝게 붙어 있고, 눈을 가로막는 아무 것도 없다. 가는 길에 쌍계사나 연곡사를 이미 들렀다면 올 때에는 이 길을 달려봄직하다.

19번 국도 화엄사입구에서 하동 방향으로 6.4㎞를 달리면 왼쪽 언덕 위에 구례동중학교가 보이고 맞은 편으로 다리가 걸쳐져 있다. 양일교이다. 다리를 건너 1㎞ 남짓 달리면 사거리가 나오고 좌회전하면 861번 도로이다.

이 길에도 고즈넉한 분위기의 명소가 많다. 육조정, 칠성사, 돌티미나루등…. 빼놓을 수 없는 게 광양시 다압면의 매화마을이다. 아직 꽃을 보기는 이르지만 언덕을 뒤덮은 매화나무와 2,000개가 넘는 매실독의 장관을 구경할 수 있다. 압권은 푸른 강물 너머로 솟아있는 지리산의 연봉. 요즘 머리에 하얀 눈을 이고 있다. 정상의 눈이 녹을 즈음이면 산 아래부터 희고 노란 꽃의 바다가 펼쳐진다. /권오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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