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시민연대 등 시민단체의 공천반대 명단 발표는 김대중 대통령의 인식 속에서는 시대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김대통령은 자민련의 반발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시민단체의 활동을 「국민이 참여하는 정치라는 시대흐름의 반영」이라고 규정했다.김대통령은 특히 『정치권의 자체 해결능력과 자정능력의 부족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시민단체들이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큰 틀에서 시민단체와 흐름을 같이하겠다는 분명한 선언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김대통령은 시민단체의 명단을 공천에 반영하겠다고 재차 밝혔다. 다만 『당사자의 해명, 선거구민의 여론도 들어 반영 정도를 결정하겠다』는 부연설명은 있었다. 외형상 적극적인 반영과 현실 고려 사이에서 균형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인 무게중심은 현실적 고려 보다는 적극적인 반영 쪽으로 기울어 있다는 게 중론이다. 납득할만한 사유나 공헌이 제시될 경우에만 낙천명단의 인사들이 구제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김대통령이 『당 중진의 공천여부도 마찬가지』라고 말한 대목에서는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뉘앙스가 포착된다. 상당한 폭의 물갈이가 예감되고 있는 것이다.
시민단체의 공천부적격자 명단발표는 현행 선거법을 위반하고 있다. 국민 지지 및 시대흐름이 실정법의 상위개념인지, 「악법도 법」이라는 준법원칙이 우선하는 지는 정치권은 물론 법조계에서도 쟁점이 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일단 『법무장관에게 시민단체의 법 위반에 대한 고발이 들어오면 취급하라고 했다』며 준법을 원칙으로 설정했다. 이 언급은 시민단체의 「초법성(超法性)」 논란을 야기한 자신의 최근 발언에 대한 교정으로 볼 수 있다.
김대통령은 19일 법무장관의 보고를 받으면서 『시민단체의 선거활동 금지는 권위주의적 발상』이라며 『4·19나 6·10항쟁도 당시에는 실정법에 저촉됐지만 후에 정당성이 입증됐다』고 말한 바 있다. 김대통령은 회견에서 『역사의 얘기, 일반론적인 얘기를 한 것』이라고 해명하고 준법을 강조했다.
그렇다고 시민단체의 활동을 처벌대상으로 삼으라는 것은 아니다. 김대통령이 『꼭 구속하라는 것은 아니다』고 말한 데서 법의 유연한 운용이 해법으로 제시됐다. 현행 선거법의 87조를 폐지하고 58조(선거운동 범위) 59조(사전선거운동)를 개정·보완하면, 시민단체에 대한 고발도 불기소 처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해석이다.
탈북자의 북한 송환은 김대중 대통령에게는 아픈 상처였다. 인도주의적 차원에서도 그렇고, 잘 나가던 현 정부의 4강 외교가 처음으로 구체적인 실패를 맛보았다는 사실에서도 그랬다. 『4강 외교에 허점이 생긴 게 아니냐』는 의문, 『중국과 러시아가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려는 시그널이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김대통령은 회견에서 『큰 틀에서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우리의 한반도 정책을 지지하고, 남북협력과 긴장완화가 중국과 러시아에도 이익이 된다는 사실은 불변이라는 것이다. 김대통령은 『탈북자 문제로 큰 국익의 협력에 차질이 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한·중, 한·러 관계의 공고함을 거듭 밝혔다.
김대통령은 탈북자의 북송이 외교흐름의 변화가 아닌 기술적 실수에서 기인했다고 보고 있다. 김대통령은 『현 정부 들어서 탈북자 200여명이 조용히 들어왔다』고 말했다. 언론의 보도가 결과적으로 문제가 됐다고 거듭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김대통령은 탈북자 문제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국제관계를 고려, 밝힐 수 없다』는 언급에서 극적인 구출의 가능성을 희미하게나마 읽을 수 있다.
이영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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