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0일 발표한 미국 최대의 미디어 그룹인 타임-워너사와 최대의 인터넷 회사인 아메리카온라인(AOL)사의 합병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의미있다.첫번째 주목을 받은 사실은 영화, TV, 잡지 등 소위 구(舊)미디어와 인터넷이라는 신(新)미디어 사이에 처음으로 본격적인 결합이 이루어졌다는 것인데 이번 합병과 유사한 합병이 앞으로 많이 이루어진다면 영화나 뉴스 등이 인터넷을 통해 가정으로 직접 배달되는 미디어 산업의 혁신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이것보다도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이번 합병이 표면적으로는 양사간의 동등한 결합을 내세우고 있지만 사실상은 생긴 지 얼마되지 않는 AOL이라는 신출내기 회사가 매출액이 자신의 4배나 되는 미국 최대의 미디어그룹인 타임-워너사를 접수했다는 것이다(AOL은 새로 생긴 회사의 지분 55%를 소유하게 된다). 때문에 일부에서는 이번 합병이야말로 인터넷 경제의 승리를 예고하는 서곡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얼마나 타당한가. 무엇보다도 이번 합병이 보여준 사실은, 인터넷이라는 것은 정보의 전달 수단에 불과하므로 소비자가 관심을 가질만한 정보를 창출하는 기존의 미디어 산업이 없이는 인터넷 경제는 계속 확장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인터넷이 대체하는 것은 신문지나 영화 스크린이지 신문기사나 영화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인터넷의 「기생성(寄生性)」이 바로 AOL이 주가 기준으로는 타임-워너의 2배 가량이 되었음에도(합병시 AOL의 주가 총액은 1,630억달러, 타임-워너의 주가 총액은 760억달러)합병된 회사의 3분의2가 아닌 55%만을 통제하기로 하는 커다란 「양보」를 한 이유이다.
둘째로 AOL과 타임-워너의 합병, 그리고 나아가서 구미디어와 신미디어의 광범한 결합이 성공할지는 아직도 미지수이다. 타임-워너 자체가 영화사인 워너브라더스사, 잡지사인 타임사, 그리고 케이블채널인 CNN 등 다양한 회사가 합병되어 탄생된 회사로 아직도 내부 갈등이 많은 회사인데다, 여기에 전혀 성격이 다른 AOL까지 가세하게 되면 과연 회사가 제대로 운영될 수 있을까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다. 아울러 우리는 지금까지 비교적 소규모로나마 시도되었던 인터넷사와 기존 미디어회사들간의 합병이 모두 실패로 돌아갔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AOL의 매출액이 타임-워너의 25%도 채 안되면서 그 주가가 2배가 넘었다는 것은 현재 미국 주식투자자들이 인터넷 사업의 장래성을 엄청나게 과대평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AOL은 그나마 자리를 잡아 이윤이라도 내던 회사이지만 인터넷서점으로 유명한 아마존사 등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인터넷 회사들은 지금까지 이윤을 한번도 낸 적이 없는데도 기존산업에 속하는 회사들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주가를 누리고 있다.
물론 투자자들이 새로 시작되는 산업에 투자를 할 때 현제 이윤보다는 장래성을 보고 하는 것이지만현재 인터넷회사의 주가는 투기에 의해 부풀려져 있을 것이라고 보지 않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정도까지 치솟아 있다. 미국 경제가 조만간 조정기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을 것은 이렇게 과대평가된 인터넷주들이다.
앞으로 인터넷의 중요성이 전세계적으로 당분간 급격하게 증가할 것은 틀림 없다. 그러나 이상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미국을 필두로 하여 전세계적으로 인터넷의 영향력과 장래성이 크게 과대평가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는 힘들다. 새로운 기술적 조류를 잘 파악하고 그것을 능동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냉철한 판단에 기초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는 커다란 실망만 안겨줄 수도 있는 것이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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