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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자들의 멍청한 짓] 관료사회의 무책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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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자들의 멍청한 짓] 관료사회의 무책임주의

입력
2000.0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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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공무원 사회를 빗대어 '되는 일도 없고 안되는 일도 없다'는 말을 해왔다. 이런 상황은 아직도 바뀌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그것은 다분히 품의에 의한 의사결정방식때문이다.말단 직원이 품의서를 작성해 상관에게 올리고, 상관은 이를 또다시 자신의 상관에게 올리는 과정을 되풀이하여 최종결정에 이른다.

그러다보니 거미줄처럼 엉킨 각종 규정과 중간 결재자 모두를 만족시켜 줄만한 두루뭉실한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되는 일도 없고 안되는 일도 없게 되는 희한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한 조사보고서에 의하면 정부의 결재단계가 평균 4∼5단계에 이른다고 한다.

이러한 결재 방식에서는 누가 무슨 일을 어디서 어떻게 결정했는지를 명확히 알 수 없다. 한 사안에 대해 여러사람이 집단적으로 관여하기 때문에 결과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게 된다는 결정적인 문제점이 있다.

제2차 대전 직후 일본에 '일억총참회'라는 말이 유행했다.

전쟁에 대해 일본국민 모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모두가 다같이 책임을 지겠다는 말은 결국 아무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

전쟁에 대한 책임은 고사하고 식민지 정책에 대한 망언을 지금도 계속하는 일본인들을 보면 집단적 책임이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것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 할 수 있다.

일본적 집단의식의 소산인 품의제도에 의한 의사결정 결과도 마찬가지이다. 집단적 의사결정이므로 어느 특정인에게 책임을 귀속시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사실상 의사결정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개인을 조직속에 숨어 버릴수 있게 된다.

독일은 이런 점에서 일본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나치에 가담하여 적극적으로 가혹행위를 한 사람들을 지금도 찾아내 재판에 회부하고 있는 것이다. 전시에서의 개인행위에 대한 책임조차 개인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있다. 조직이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놀랍게도 '사람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이 일하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하지만 조직이란 의사결정의 수단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의사결정은 조직에 의해 이뤄지는 게 아니라 조직구성원에 의해 이뤄진다.

서구인들은 일반적으로 조직은 일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이해한다. Organization이란 말은 희랍어의 수단 또는 도구하는 의미를 지닌 Organon 에서 나왔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조직이란 항상 일을 잘하게 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분명한 인식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느 안타깝게도 일제의 군국주의적 조직인식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다.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고 그 일의 결과에 대한 책임도 반드시 조직이 아닌 사람에게 귀속시켜야 한다.

하지만 외환위기를 초래케했던 높은 자리에 있던 '똑똑한' 사람들이나 성공한 쿠테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해괴망칙한 법률적 판단을 내렸던 것으로 간주되는 분위기이다. 사람이 일한 게 아니라 조직이 일했기 때문일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품의제도의 무책임주의가 가져다 주는 또 하나의 비극이다.

최동석 조직개혁전문가 한국은행 직무평가 팀장

tschoe@b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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