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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민중주의적 개입의 정치권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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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민중주의적 개입의 정치권 변화

입력
2000.0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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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총선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이번 총선의 예상 후보자 중 문제 있는 사람들을 언론에 공개하고 해당 정당에서 이들을 공천할 경우 낙선운동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에 새로운 획을 긋는 의미심장한 일이다.다 알다시피 문민정부의 출범으로 군부통치가 종식됐고 국민의 정부 탄생으로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처음으로 이루어졌다. 모두 문제는 있었지만 민주주의의 발전에 그 나름대로 한 획을 그은 일이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고 제도가 달라져도 정치인들은 변하지 않아 정치의 질은 향상되지 않았다. 정경유착과 부정부패, 그리고 지역 붕당정치는 군사정권 시절이나 민간정권 시절이나 큰 차이가 없었다. 사람들은 이런 현실에 실망하고 초기 민주주의가 불러오는 정치불안을 두려워 하고 집단이기주의의 분출에 한탄했다. 심지어 독재에 대한 향수마저 일어나 박정희(朴正熙) 흠모 열풍이 불기도 했다.

이 모든 현상이 정치권의 타락 때문이었다. 정치권이나 일반 국민이나 문제는 알고 있었지만 이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무런 방책도 찾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단체들이 공천반대 운동, 낙선운동을 들고 나온 것이다.

제도만의 민주주의를 한걸음 더 나아간 시민참여 민주주의로 키우는데 기여했던 시민사회단체들이 이제 정치권에 일종의 시민혁명을 불러일으키려 하는 것이다. 이 운동이 성공하면 한국정치의 모습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이에 대해 국민들은 전폭 지지하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얼마나 구태의연한 패거리 정치에 신물을 내 왔는가. 대안에 목말라 하던 시민들에게 새롭고 현실적인 방안이 제시됐으니 속이 후련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론 이런 방식의 정치운동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민간단체들의 정치개입을 금지한 현행 선거법을 어기는 문제가 생긴다. 목적은 결코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고 악법도 지켜야 한다. 그것은 글쓴이의 소신이기도 하다. 그러나 법을 어기는 나쁜 짓이 더 나쁜 악을 없애기 위한 것이라면, 그리고 그것이 평화로운 방법에 따른 것이라면, 이 「나쁜 짓」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으로써 「더 나쁜」 법을 고쳐야 한다. 시민 불복종운동의 본질이다.

또 이 운동은 개인의 인권이나 권리, 명예를 손상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기에 명단공개에 앞서 신중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처음하는 일이라 실수도 있을 수 있다. 만약 그런 실수가 밝혀진다면 책임있는 공공단체 답게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시민의 팔십 몇 퍼센트가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만큼 비정상적인 상황이라는 얘기다. 시민단체들도 이 점을 유의해야 한다.

시민단체들이 지금 벌이고 있는 정치정화운동은 민중주의적인 성격이 강하다. 이런 점이 보수인사나 보수언론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 그들은 민중과 관련된 모든 것에 정서적인 거부감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법을 내세우며 선동정치라고 비난한다. 앞으로 민주주의가 정착되면 이런 민중방식의 운동은 자연히 수그러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은 때가 아니다. 우리의 정치를 제도권과 그 속에 안주하는 정치인, 지배층에게 맡겨놓기에는 우리의 희망이 너무 크고 그들의 자질이 너무 부족하다. 이런 낙선운동이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우리 사회의 얼개가 아직 기득권으로 굳어져버리지는 않았다는 증거다. 그만큼 한국 사회는 「어리기도」하지만 희망도 있다.

김영명 한림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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