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발레단의 수석무용수였던 김용걸(27)의 파리오페라발레 입단 소식이 전해진 20일, 국립발레단 연습실은 놀라움과 기쁨의 탄성이 터졌다. 파리오페라발레라니, 그 꿈만 같은 무대에 서게 되다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들이다.파리오페라발레는 1661년 루이 16세가 설립한 왕립무용아카데미에서 출발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발레단이다. 러시아 볼쇼이발레단 등과 더불어 세계 5대 발레단에 꼽힌다. 발레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산물이지만, 그것을 예술로 꽃피운 나라는 프랑스다. 오늘날 발레 종주국을 자부하는 러시아 발레도 마리우스 프티파 등 프랑스인들이 건너가 가르친 것이다. 지금도 발레 용어는 다 프랑스어로 되어있다. 그런 내력으로 파리오페라발레는 프랑스의 자존심이자 외국인에게 지독하게 배타적이다. 콧대 높기로 유명한 이 발레단에 그가 들어간 것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다. 그는 유일한 동양인 남자 단원이 됐다. 여자로는 지난해에 들어간 일본인이 한 명 있을 뿐이다.
현재 외국의 주요 발레단에서 활약하는 한국인은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강수진(33), 러시아 볼쇼이발레단의 배주윤(23), 마린스키발레단의 유지연(24), 미국 아메리칸발레시어터의 강예나(25)가 있다.
1986년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최연소 단원으로 들어간 강수진은 1997년 수석무용수가 되어 이 발레단의 최고 스타로 활약하고 있으며 지난해 모스크바 국제무용협회의 「브누아 드 라 당스」 최고 여성 무용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배주윤은 1996년 볼쇼이 연수단원으로 들어간 지 2년 만인 1999년 정단원이 됐다. 유지연은 1995년 마린스키 2진인 말리컴퍼니에서 시작해 1997년 메인컴퍼니 정단원으로 합류했다. 강예나는 1998년 아메리칸발레시어터 단원이 됐다.
강수진은 이미 세계적인 스타이지만, 다른 세 명은 아직 솔리스트가 아닌 군무 또는 데미솔리스트(솔로 겸 군무)로 무대에 서고 있다. 입단하면 일단 군무부터 하는 게 관례다. 김용걸도 파리오페라발레에서 군무로 시작한다. 경험과 실력이 쌓이면 데미솔리스트-솔리스트를 거쳐 수석무용수까지 바라볼 수 있다. 입단도 어렵지만, 꼭대기까지 올라가기는 더욱 어렵다. 세계 무대의 벽은 그만큼 높다.
강수진 배주윤 유지연 강예나가 모두 여자이고 조기유학을 한 데 비해, 김용걸은 남자이고 순전히 국내교육만으로 성장했다. 성균관대 무용과를 졸업한 1995년부터 국립발레단에서 활동하다 지난 연말로 그만 뒀다. 그의 파리 오페라발레 입성은 한국인 남자 무용수 최초의 경사이자 외국유학 없이도 세계 무대를 두드릴 수 있을 만큼 한국 발레의 힘이 커졌음을 가리킨다.
1990년대 후반은 한국발레의 중흥기로 기록될 것이다. 공연 회수가 부쩍 늘었고 주요 국제콩쿠르 입상 소식이 줄을 이었으며 객석이 붐비기 시작했다.
1998년 국립발레단의 김용걸-김지영이 파리콩쿠르에서 2인무로 1등을 차지한 것을 비롯해 세계 5대 발레 콩쿠르로 꼽히는 룩셈부르크, 잭슨빌, 바르나, 모스크바 콩쿠르에서 모두 한국인 입상자가 나왔다. 바야흐로 한국 발레는 세계를 향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관객의 격려가 그 날갯짓을 더욱 힘차게 해줄 것이다.
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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