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송두리째 바뀌어버릴 것만 같이 떠들썩했던 새 밀레니엄. 그 고대되던 새 천년이 시작된 지도 벌써 한 달이 되어간다. 늘 보던 주변의 얼굴들을 다시 본다는 것 자체가 왠지 모순처럼 여겨지지만, 새로운 변혁에 대한 도도한 움직임 만은 우리 모두 감지하고 있는 터이다.기존의 제도나 사고의 틀을 버리고 모두 새롭게 시작하는 환경… 이러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시회들이 미술계에도 시작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미술회관에서 28일부터 2월 9일까지 동시에 펼쳐질 「벽사전」( 邪展)과 「0의 공간, 시간의 연못전」은 새천년 벽두 바로 이런 정황 속에서 시작되는 전시회이다. 문예진흥원이 올해부터 우수전시기획자 지원을 위해 시작한 기획공모전에서 선정된 다섯 작품 중 일부이다.
악귀를 쫓는 벽사라고? 짐승의 피를 벽에 바르는 진부한 우리의 세시풍속이 아니던가? 벽사전을 기획한 임영길 홍익대 판화과 교수는 『멀티미디어 작가 판화가 화가 등 시각예술가 16명이 우리 무속신앙의 의미를 새시대 예술의 방식으로 재해석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새시대의 어법이란 무엇일까. 디지털 굿이라도 펼쳐보이겠다는 속셈인가.
임 교수는 『전인미답의 목초지를 향하여 유랑하는 유목민의 심정으로 다양한 표현매체와 기법, 장르를 혼융해 무속신앙이란 주제를 한국적 퍼포먼스로 도출해보겠다』고 말한다.
김찬동 미술회관 팀장은 『디지털적 사고로 컴퓨터나 멀티미디어와 무(巫)를 결합, 무에 대한 전자적 해석을 시도했다』 면서 특히 웹(www.aroot.pe.kr)상에서 인터랙티브 기법을 활용해 사이버 스페이스 굿 등을 펼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임 교수 외에 김명준 서강대 영상대학원 교수, 이광록 KBS PD가 공동기획했으며 강소영 권순구 김규정 김재응 박민정 배성한 송계영 심철웅 엄정호 윤여걸 이광록 이성실 이재철 이종한 임영길 차재홍 씨 등 작가들이 멀티미디어 설치물, 아트 이벤트, 입체 작품, 아트 북, 영상물, 판화 등 작업을 보여준다.
같은 기간 미술회관 2전시실에서 열리는 「0의 공간, 시간의 연못전」은 우리 새로운 세대 작가들의 실험예술의 가능성을 타진해보는 자리이다. 설치작가 김태곤씨와 현대음악 작곡가 문성준씨가 공동 작업하는 「공연+전시」이다.
김씨는 『미술과 음악이라는 두 다른 장르를 하나의 공간과 시간 속에서 융합해 볼 참』 이라면서 『관객들은 정글과 같은 빛의 공간을 조심스럽게 걸어다니면서 시작도 끝도 없이, 하나의 루프(Loop)로 순환되는 음악을 경험하게 될 것』 이라고 말했다.
디스코테크에서나 볼 수 있는 번쩍거리는 블랙형광등 조명 아래 핑크 연두 노랑 빛 형광색으로 염색한 수많은 실들이 150평 공간을 수직, 수평의 구조로 분할하고, 바닥에 놓인 6개의 스피커에선 문성준이 이번 전시회를 위해 작곡한 「연못」이란 제목의 피아노 음을 컴퓨터로 합성한 전자음향이 반복해 흘러나오게 된다.
이 형광색의 실줄들은 가로, 세로로 팽팽하게 설치돼 있지만, 서로 닿아서 폐쇄된 공간을 만들지는 않아 관객들에게 흡사 가늘고 긴 레이저 빛의 향연과 같은 이완된 공간을 자유롭게 만끽하도록 이끌고 있다.
특히 스피커를 통해 전시기간 중 매일 오후 7시 30분에는 비올라와 바이올린이 함께 하는 현악협연이 있을 예정이어서, 이왕이면 이 시간대에 맞추어 전시장을 찾을 것을 권한다.
김씨는 『빛을 통해 시간과 공간의 속성을, 연주자들의 실연을 통해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인식하는 사람이 그렇게 지각할 뿐이라는 개념(20세기 물리학의 개념)을 깨달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나의 고리로 연결되어 끝없이 순환하는 선(線)적인 소리들과, 공간상에서 좌표와 같이 마치 걸어 다니는 듯 느껴지는 점(點)적인 소리들과, 미세한 입자를 흩뿌려 놓은 것과 같은 면(面)적인 음향을 경험하면서 연못안에 고여있는 시간, 정체돼 있는 시간의 의미를 느낄 수 있다.
스스로를 정신적 감성적 환경운동가라면서 시간과 공간의 의미를 탐색해보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전시회 역시 사이버공간(http://mypage.chanelli.net/stormtree)에서도 펼쳐진다.
송영주기자
yj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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