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랙티브」(interactive). 요즈음 문화·예술계의 화두다. 이 개념을 한 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사전적 의미는 「상호작용하는」이란 뜻이다. 서로 다른 개체가 반응을 주고 받는, 그래서 서로 개입하고 변형을 일으키는, 고정되지 않은 「열린」 판은 인터랙티브의 속성을 띠고 있다.인터랙티브 예술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다. 인터랙티브를 표방한 공연과 전시들이 하나 둘 무대를 장식하며 인터랙티브란 말이 더이상 낯설지 않게 다가오고 있다.
인터랙티브 혁명
마당극이나 판소리에서 관객은 단순한 구경꾼에 머물지 않고 배우나 소리꾼과 행위를 주고 받는다.
오케스트라의 연주자와 지휘자 관계는 인터랙티브하다. 예술가들의 즉흥 무대도 그러하다. 그러나 서로 다른 장소에서 동시에 쌍방향 교류와 개입을 일으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적어도 디지털 기술이 서로 다른 공간을 실시간으로 이어주기 전까지는 그랬다. 디지털 시대의 의사소통 방식의 인터랙티브 혁명은 예술의 생산자와 소비자 관계를 비롯한 인간 관계의 변화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상호작용의 세계는 우리가 일찌기 경험하지 못했던 신천지다.
22일 국립극장에서 열린 새로운 예술의 해 개막공연은 그러한 변화를 짐작케 하는 것이었다. 대극장과 소극장으로 서로 떨어진 예술가들이 영상·음향 전송시스템으로 연결돼 서로의 몸짓과 소리를 보고 들으면서 음악, 연극, 춤이 한데 어우러진 하나의 종합예술을 창조했다.
실시간 쌍방향 교류로 융합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그것은 단순한 모자이크나 크로스오버(장르의 혼합)를 뛰어넘는다.
각 장르별 인터랙티브
쌍방향성을 핵심으로 하는 디지털 시대 인터랙티브의 방식은 공연 뿐 아니라대중음악과 영화, 방송에서도 시도되고 있다.
지상파 방송에서 쌍방향성은 이제 발걸음을 떼고 있는 수준이다. 내달 4일 파일럿(시험용) 프로그램으로 방송될 MBC 「김국진의 결정! 당신의 선택」은 시청자의 ARS 참여로 결말이 달라진다. 두 가지 결말을 미리 찍어뒀다가 선택된 것을 내보내는 형식이지만, 시청자가 개입한다는 점에서 인터랙티브하다.
이제 시험기를 거치고 있는 인터넷방송은 쌍방향성에 좀 더 근접해 있지만, 아직 주문형 비디오 수준에 머물러 있다.
시청자는 파일로 저장된 프로그램을 원할 때 골라 볼 수 있지만 그 내용에 직접 개입할 수는 없다.
스타가 지배하는 대중음악은 인터랙티브 진척도가 가장 낮은 편이다. 압축파일로 음악을 듣는 MP3는 그나마 인터랙티브의 가능성이 가장 높은 분야. 천리안·인터넷 MP3 무료 사이트인 「MPIA」의 경우 아마추어 가수들의 음악파일을 올려두고 다운로드 수가 가장 많은 아티스트의 음악을 CD로 제작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나온 것이 그룹 「안단테」의 첫 음반.
인터랙티브 영화는 기획·제작·상영이 모두 관객 중심으로 이뤄지는 주문형 영화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관객이 영화 스토리의 전개 방향을 건의하거나 소재나 주제,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주인공이나 스태프로 참여하기도 한다. 국내 최초의 인터넷 인터랙티브 영화사 「네오무비」(www.neomovie.com)는 최초의 인터랙티브 영화인 「영호프의 하루」를 비롯해 「뱀파이어의 블루」등을 회원을 참여시켜 제작했다. 네오무비는 인터랙티브 CF까지 제작 중이다.
「크리스마스 살인행진곡」이란 제목의 CF는 산장에서의 연쇄살인을 다룬 것으로 네티즌들의 선택에 따라 이야기가 다각도로 전개된다.
한글과 컴퓨터의 「예카」(www.haansoft.com/yeca) 역시 인터넷에서만 볼 수 있는 영화 8편을 제작했고, 관객들로부터 주문받은 영화를 상영하는 인터넷 주문형 극장 「씨네파크」(www.cinepark.com), 두루넷의 「성인용극장」(www.thrunet.com) 등도 점차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다.
미술에서 인터랙티브 아트는 컴퓨터를 기본 매체로 하는 멀티미디어 작업으로 나타난다. 관객은 작품과 대화를 나누고 자신의 의사를 작품에 반영할 수 도 있다.
예컨대 사용자가 마우스를 클릭하면 디지털 데이터가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고 그 음계가 영상 이미지로 바뀌어 화면에 나타난다.
관객이 센서가 달린 지휘봉을 휘두르면 디지털 이미지의 가상 생물이 자라는가 하면 작가가 개설한 작업 사이트에 관객이 접속해 작품 제작에 참여하기도 한다.
국내에서는 제1회 광주 비엔날레 「인포아트전」과 제 1회 경주세계문화엑스포 「멀티미디어 아트전」 등에서 인터랙티브 아트가 소개된 적이 있고, 오는 9월 서울시가 주최하는 「미디어 시티 서울 2000」에서 국제미디어아트 초대전이 주행사로 열릴 예정이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예술의해' 개막공연 총지휘 작곡가 이돈웅씨
새로운 예술의 해 개막공연(22일 국립극장)을 마치고 예술감독 이돈응(작곡가·한양대 교수)씨는 탈진했다.
이 행사를 총지휘하느라 일주일 동안 거의 잠을 못잤기 때문이다.
이날 공연은 국립극장의 대극장과 소극장을 실시간 네트워크로 연결해 양 쪽에서 따로 이뤄지는 예술행위를 하나의 작품으로 엮어냈다. 따로 떨어진 두 곳에서 동시에 상호작용을 한다는 게 도대체 가능하냐, 어떻게 그것을 드러낼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거기 참여하는 예술가들에게 일일이 개념을 설명해야 했다.
기술 지원이 따르지 않은 것도 그를 괴롭혔다. 두 극장을 잇는 오디오 전송용 특수전선을 직접 만들고 깔았다. 3주도 안되는 기간에 공연을 준비하느라 녹초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애써 만들었건만 새로울 게 없다는 반응도 나왔다. 전통과 현대의 만남, 음악·연극·무용 등 여러 장르의 통합, 서로 다른 공간의 연결 등은 전에도 있던 거다, 뭐가 새롭다는 소리냐. 그런 말이 그를 흥분시켰다.
『겉모습만 보면 새롭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네트워크를 통해 두 개의 장소에서 동시 프로세싱으로 하나의 작품을 만든 것은 분명 새로운 것입니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경험이고 디지털 기술 덕분에 가능해진 것이죠. 제 꿈은 누가 어디 있든 가상공간에서 만나 같이 숨쉬고 느끼는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는 인터랙티브 네트워크 아트 시리즈를 구상 중이며 독일의 엑스포 「하노버 2000」에서 위성을 활용해 세계의 여러 도시를 실시간 쌍방향으로 연결하는 예술작업도 계획하고 있다.
이날 관객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 많았다. 무대에서 너무 많은 일이 한꺼번에 일어나 충분히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또 대극장과 소극장 사이 영상 전송이 매끄럽지 않아 다른 한 쪽에서 벌어지는 일을 제대로 알 수 없었다. 양쪽 무대의 예술가들은 불완전하나마 쌍방향 교류를 했지만, 관객과 무대의 상호 개입은 이뤄지지 않았다. 관객은 구경꾼에 그쳤다.
이날 피날레에 울려퍼진 임종우의 「음성혼합 합창곡」은 로비에서 녹취한 관객의 음성을 변형해 만든 음악으로, 개개인의 서로 다른 음성이 하모니를 이루는 경험을 통해 「우리는 하나」임을 깨닫게 했다. 떨어져 있음과 함께 있음을 동시에 경험하는 것, 그것은 디지털 시대 예술의 「열린」양식을 예감케 하는 것이었다.
/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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