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한국사회의 대중문화적 현상을 상징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 「압구정동」일 것이다. 「체제」와 「이념」이라는 말로 대표되던 80년대가 끝나갈 때, 새로운 점령군으로 한국사회에 진주해 들어온 것은 선글래스를 끼거나 머리가 벗겨진 군인들이 아니라, 압구정동식 대중문화였다.유하(37)의 시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연작(1991년)은 바로 그 시대적 징후를 가장 앞서서 포착한 문학이었다. 문학이었으되 스스로 대중문화에 중독된 어법으로, 유하는 90년대의 시작을 알렸다. 60년대초 김승옥이 「무진기행」에서 안개처럼 몽롱한 상실감에 점령당한 젊은이들의 의식을 소설로 드러냈다면, 90년대 초입의 유하는 압구정동식 대중문화에 침공당하고 있는 젊은이들의 의식의 혼란을 시라는 형식으로 표출했다.
그의 압구정동 연작 중 제일 널리 알려진 2편 「욕망의 통조림 또는 묘지」의 첫 구절 「압구정동은 체제가 만들어낸 욕망의 통조림 공장이다」에 나오는 「체제」와 「욕망」은 각각 80년대와 90년대를 극명하게 대비시키는 단어들이다. 폭력적·물리적 권력 대신 이미지 중심의 대중문화가 훨씬 더 미세한 일상의 권력으로 자리잡던 시절, 한국 자본주의의 욕망을 유하는 「왕성하게 숨막히게 숨가쁘게/그러나 갈수록 시하게」라는 시구로 풍자했다.
90년대에 압구정동이 있었다면 물론 그 전에도 우리 사회 유흥문화의 변화를 요약할 수 있는 공간은 존재했다. 60년대에는 명동, 70년대에는 종로, 80년대에는 이태원 하는 식으로. 그러나 압구정동은 달랐다. 『명동에서 이태원에 이르기까지의 놀이문화는, 국외자들에게도 즉흥적이고 자유로운 편입을 허용했다. 속된 말로 유흥비만 있으면 언제든지 「껀수」를 올릴 수 있는 관능적 돌발성이 그 공간을 지배했다. 그러나 압구정동은 달랐다』
유하는 압구정동은 그러한 국외적 방문객들의 틈입을 허용하지 않는 정교한 구조를 갖고 있었다고 말한다. 이른바 압구정동식 스타일은 거기 편입되고자 하는 인간들에게 「국화빵 통과제의」를 요구했다. 미장원 출입과 무쓰 스프레이로 얻어지는 첨단의 헤어스타일, 똥꼬치마, 말가죽 부츠, 목걸이, 주윤발 코트, 최소한 스쿠프 이상의 승용차 등은 그 통과제의를 거치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준비사항들이다. 이렇게 무장하고 물좋은 카페와 디스코데크를 옮겨다니며, 로바다야키 미팅, 비디오케에서 일본 노래를 부르지 못했다면 그들은 결코 압구정동에 편입될 수 없었다. 90년대 내내 사회문제가 되었던 이른바 「오렌지족」은 될 수 없었다. 오렌지족이 아닌 이들에게 압구정동은 욕망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질시의 대상이었고, 함께 뛰놀고 싶은 수족관이면서 동시에 결코 그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이 바라만 봐야 하는 쇼윈도우일뿐이었다.
유하 역시 그 쇼윈도우를 바라보면서 분노하는 젊은이였다. 롤랑 바르트의 표현대로 「욕망을 가르쳐주는 기계」같은 대중문화의 창궐을 막 목도하면서, 결코 자신과 같은 열세종은 편입될 수 없는 이 「우세종(優勢種)의 해방구」를 때로는 「계몽」해볼까도 하는 생각을 하면서(그러나 이 「계몽」은 처음부터 성공할 수 없는 기획이었다).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사과맛 버찌맛/온갖 야리꾸리한 맛, 무쓰 스프레이 웰라폼 향기 흩날리는 거리/웬디스의 소녀들, 부띠크의 여인들, 까페 상류사회의 문을 나서는/구찌 핸드백을 든 다찌들 오예, 바람불면 전면적으로 드러나는/저 흐벅진 허벅지들이여 시들지 않는 번뇌의 꽃들이여/하얀 다리들의 숲을 지나며 나는, 끝없이 이어진 내 번뇌의 구름다리를/출렁출렁 바라본다」(연작 6편 부분).
유하의 압구정동 연작은 처음에는 이런 문명·문화비판적 시는 아니었다. 오히려 환경론으로 쓴 시였다. 중고교시절 친구 집을 찾아 이름도 희한한 압구정동이란 데를 처음 와 봤었던 그는 그 마을을 온통 뒤덮고 있던 배밭들이 다 사라지는 대신 황지우의 시 제목을 딴 「겨울_나무로부터 봄_나무에로」라는 카페가 생기고, 거대한 아파트단지들이 들어서는 풍경을 보면서 첫 시(연작 1편)를 썼다. 선운사가 있는 전북 고창군의 하나대라는 시골 부락에서 나서 자란 그에게 그것은 「문화충격」이었다. 그 시를 본 지인들이 『도대체 압구정동이 어디냐』고 물었을 정도였다. 연작 1편은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전통적 의미의 고향을 가진 마지막 세대의 아쉬움 어린 넋두리였을 수도 있다.
이후 영화를 전공했던 그가 단편영화를 찍는다고 카메라를 들고 이곳을 어슬렁거리며 막연하게나마 『새로운 풍경들이 몰려오고 있구나』고 느낀다. 『이미지의 거대한 블랙홀 앞에 선 것이 오늘날의 시가 처한 운명이라면, 그 이미지들이야말로 진정 시가 다루고 응전해야 할 대상이 아닐가. 사실, 고도 산업사회의 우리가 늘 눈으로 마주치고 몸으로 느끼는 것은 산이나 강, 돌 같은 자연이 아니라 TV광고, 대중스타, 쇼윈도우, 패션, 영화 포스터 따위의 도시 공간속의 이미지들이다』
이 현상을 그는 비속어와 요설, 광고카피의 문구와 여배우의 이름을 섞어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패러디하고 풍자했다. 대중문화를 비판하면서 대중문화의 각종 요소들을 그대로 차용한 시어들로 시를 썼다. 지금은 오히려 너무 익숙한 기법이 돼버렸지만, 당시만 해도 엄숙한 시라는 형식에서 너무 낯설어보였던 그의 시는 일부 평자들 사이에서는 「주체의 죽음」이자 「실존적 자아」를 상실한 「키치(kitsch) 중독자」의 넋두리로 비판됐다. 그러나 유하는 『지금 이 시들을 읽어보면 오히려 너무 국외자의 입장에 서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비판과 계몽의 시각을 버리고, 스펙타클에 대한 나의 매혹의 느낌들을 극단까지 밀고 나갔다면 그 스펙타클적 권력의 가장 깊은 곳까지를 시의 렌즈에 담아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는 것이다.
『압구정동이요? 영등포랑 똑 같아요』
「산다는 일이 뭐 뾰족한 일이 있으랴 넥타이 매고/소주잔 돌리며 지글지글 삼겹살이나 뒤집는 일 외에」(연작 5편). 유하의 시구처럼 삼겹살집에서 소주잔을 돌리던 일행에게 고깃살을 얹어주던 주인은 이렇게 말했다. 그의 말대로 압구정동은 이제 많이 변했다. 그 흐벅진 허벅지를 자랑하는 여자들과, 온갖 현란한 이미지가 들끓던 스펙타클한 거리의 풍경은 10년 사이 변해버려, 압구정동은 이제 한국 어디에나 있는 그렇고 그런 거리의 하나가 돼버렸다. 삼겹살집 주인은 압구정동이 너무 유명해진 뒤로 온갖 「낑깡」들이 몰려들고, 오렌지족이 사회문제가 되자 경찰이 단속까지 나서는 통에 「물좋은」여자들과 진짜 오렌지들은 다시 그들만의 공간을 찾아 청담동으로, 홍대앞으로 이동해버렸다는 것이다. 유하가 카메라를 들고 드나들었던 지하카페 「겨울_나무에서…」는 프랑스 영화감독 뤽 베송의 신작 영화제목을 딴 다른 이름의 카페로 변해있었다. 아직도 갤러리아백화점을 한양쇼핑으로 기억하고 있는 유하는 『10여년 전인 90년대초 압구정동의 풍경이 내 20대의 내면 풍경과 꼭 같았다면, 지금 달라진 압구정동의 모습은 30대 후반의 내 내면 풍경과 꼭 같이 닮아있다. 한마디로 썰렁하다』고 말했다.
■약력
▲1963년 전북 고창 출생
▲세종대 영문과·동국대 대학원 연극영화과 졸업
▲88년 「문예중앙」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무림일기」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세상의 모든 저녁」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 「나의 사랑은 나비처럼 가벼웠다」
▲96년 제15회 김수영문학상 수상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2
- 욕망의 통조림 또는 묘지
압구정동은 체제가 만들어낸 욕망의 통조림 공장이다
국화빵 기계다 지하철 자동 개찰구다 어디 한번 그 투입구에
당신을 넣어보라 당신의 와꾸를 디밀어보라 예컨대 나를 포함한 소설가 박상우나
시인 함민복 같은 와꾸로는 당장은 곤란하다 넣자마자 띠_ 소리와 함께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그 투입구에 와꾸를 맞추고 싶으면 우선 일년간 하루 십 킬로의
로드웍과 섀도우 복싱 등의 피눈물 나는 하드 트레이닝으로 실버스타 스탤론이나
리차드 기어 같은 샤프한 이미지를 만들 것 일단 기본 자세가 갖추어지면
세 겹 주름바지와, 니트, 주윤발 코트, 장군의 아들 중절모, 목걸이 등의 의류 액세서리 등을 구비할 것 그 다음
미장원과 강력 무쓰를 이용한 소방차나 맥가이버 헤어스타일로 무장할 것
그걸로 끝나냐? 천만에, 스쿠프나 엑셀 GLSi의 핸들을 잡아야 그때 화룡점정이 이루어진다
그 국화빵 통과제의를 거쳐야만 비로소 압구정동 통조림통 속으로 풍덩 편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곳 어디를 둘러보라 차림새의 빈부 격차가 있는지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는 욕망의 평등 사회이다 패션의 사회주의 낙원이다
가는 곳마다 모델 탤런트 아닌 사람 없고 가는 곳마다 술과 고기가 넘쳐나니 무릉도원이 따로 없구나 미국서 똥구루마 끌다 온 놈들도 여기선 재미 많이 보는 재미 동포라 지화자. 봄날은 간다_
해서, 세속도시의 즐거움에 동참하고 싶은 자들 압구정동의 좁은 문으로 들어가길 힘쓰는구나
투입구의 좁은 문으로 몸을 막 우겨넣는구나 글쟁이들과 관능적으로 쫙 빠진 무용수들과의 심리적 거리는, 인사동과 압구정동과의 실제 거리에 비례한다
걸어가면 만날 수 있다 오, 욕망과 유혹의 삼투압이여
자, 오관으로 느껴보라, 안락하게 푹 절여진 만화방창 각종 쾌락의 묘지, 체제의 꽁치통조림 공장, 그 거대한 피스톤이, 톱니바퀴가 검은 기름의 몸체를 번득이며 손짓하는 현장을
왕성하게 숨막히게 숨가쁘게
그러나 갈수록 시하게
바람이 분다 이곳에 오라
바람이 분다 이곳에 오라
바람이 불지 않는다 그래도 이곳에 오라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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