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기한 조선민중 무엇을 꿈꾸었나1869년 3월 24일 밤. 머리에 하얀 수건을 두른 난민 70여 명이 총을 쏘며 광양성 안으로 돌진했다. 그들은 몽둥이와 쇠창만 갖고 있던 게 아니었다. 총을 들고 군기고와 창고를 열어 무기와 곡식을 탈취했다. 현감 윤영신을 붙잡아 항복문서를 바치도록 위협하면서 관인(官印)을 뺏으려 했다.
조선후기 대표적인 변란의 하나인 「광양란」 거사 첫 날 밤의 모습이다. 이 난은 의술을 익히고, 지관의 능력도 있던 민회행이 영남과 호남을 떠돌며 난을 준비하다가 관양 관아를 습격해 일으킨 사건이다. 이 무렵 변란이 잦았지만 이 난은 특히 성공한 거사로 손꼽힌다. 주모자 민회행은 20년 전부터 변란을 꿈꾸었고, 광양란이 있기 1년 전에도 장흥에서 변란을 시도한 이른바 「직업적 봉기꾼」이었다.
「민란의 시대」는 국사편찬위원회 연구원 8명이 조선시대에 민란과 변란이 일어난 사회 배경과 난의 성격을 분석한 책이다. 홍경래의 난이나 동학농민전쟁, 또는 최근 영화로 대중에게 알려진 제주 이재수의 난만 조선의 민중운동이 아니다. 규모는 서로 다르지만 생존권을 되찾기 위해, 또는 야심이나 새 세상에 대한 크나 큰 바람으로 일으킨 많은 민란과 변란이 있었다. 책을 통해 조선 민중의 역동하는 모습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엔 농민들의 봉기가 많았다. 그래서 19세기를 「민란」의 시대라고 한다. 민란은 생존을 위한 투쟁이고 주체는 농민이다. 농민항쟁의 경로란 거의 비슷한다. 관리들의 수탈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이 뜻을 모아 집회를 갖고 그들의 요구을 모아 관아에 전달한다. 하지만 관에서는 받아들일 뜻만 내비칠 뿐 농민들은 다시 수탈과 빈곤의 나락에 떨어진다. 남은 것은 봉기밖에는 없다. 책은 특히 1898년과 1901년 제주에서 일어났던 「방성칠의 난」과 「이재수의 난」에 주목했다. 농민들의 경제투쟁이라는 반봉건의 기본 구도에다 천주교 등 서양종교와의 갈등, 프랑스 군함과의 전투라는 반외세 사상까지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변란은 민중의 정치투쟁 성격이 강하다. 흔히 체제저항적인 성향을 지닌 인물들이 주도했고 혈연이나 친분 등과 같은 개인적 이해관계에 기초하여 추진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상주의를 담고 있는 정감록 등 민중사상에 기초하여 중앙권력의 쟁취를 목표로 했고 「혁명가」나 「사상가」가 이끄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지은이들은 『조선시대 민중저항은 사회 여러 분야의 변화과정과 상호작용에서 민중운동이 태동하고, 사회가 발전할 수 있도록 그 운동을 돕는다는 기본 역할에 충실했다』고 설명했다.
민란의 시대
고성훈 등 지음
가람기획 발행, 9,000원
김범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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