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에서도 경쟁은 가히 살인적이다. 연구실에는 스파이가 끊이지 않고, 논문을 몰래 훔쳐 이용하는 수는 얼마든지 있다.그러나 아득한(?) 옛날 세상에는 그렇게까지 각박하지 않았다. 겨우 140년 전인 1858년 7월1일 찰스다윈이 진화론을 발표했는데 만약 알프레드 웰레스가 없었더라면 발표는 몇년 더 늦어졌을 것이다. 한가하게 연구만 하는 박물학자였던 다윈은 대학을 나오자 5년동안 영국해군 탐험선 비글호를 타고 세계일주 해양탐사에 나섰다. 특히 남아메리카에서 800km 떨어진 갈라파고스섬에서는 희한한 동물들의 생태를 관찰했다. 왜 섬들은 서로 가깝게 붙어 있는데도 서로 다른 거북이와 참새들이 서식하게 된 것일까?
항해중 배달받은 책들이 힌트를 주었다. 라이얼교수의 '지질학원론'은 지구의 나이가 당시 알려졌던 것보다 훨씬 길다는 사실을 각인시켜 주었다. 항해를 마치고 1838년에 읽은 멜서스의 '인구론'은 그에게 생물계에선 어차피 먹이를 둘러싼 경쟁이 치열하며 적자만이 생존할 수 있다는 생각을 굳혀주었다. 하지만 그는 여행록은 '비글호 항해기'로 출판했으면서도 진화론은 발표하지 않은채 시간을 끌고 있었다.
1858년 6월 멀리 동인도 항료섬에서 33세의 월레스가 다윈에게 짤막한 논문을 보냈다. 그 논문에는 다윈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진화론 모두가 그대로 적혀 있는 것이 아닌가!! 다급해진 다윈은 급히 논문을 완성, 그해 7월 발표했다. 다윈과 월레스의 공동명의였다. 그후 두 사람은 평생 사이좋게 떠받들며 살았다. 1908년 진화론 50주년 기념식은 '다윈=월레스 축제'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월레스를 기억하지 않는다. 세상이 각박하게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이제 u견발명의 우선권은 단순한 명예의 문제가 아니라 돈과도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여기엔 아차상도 애석상도 없다. 그야말로 피비린내 나는 싸움판이 도어버린 것이다./박성래(한국외국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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