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학계엔 또 하나의 게놈프로젝트가 태동하고 있다. 구조 유전체학(Structural genomics)이라 불리는, 단백질의 입체구조를 밝히려는 연구다. 미국 과학재단, 에너지부, 미 국립보건원이 지원하는 구조생물정보학협동연구(RCSB)는 단백질데이터은행(PDB)을 운영, 단백질 입체구조 데이터와 이를 예측하는 컴퓨터알고리즘(Algorithms 문제를 해결하는 풀이법)을 만드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DNA 염기서열 구조를 규명, 유전의 비밀을 밝혀내듯이 아미노산 서열을 보고 단백질 구조와 기능을 알아내는 것이 연구목표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아미노산 수백-수천개가 모인 단백질이 각각 고유의 3차원구조를 어떻게 형성하는가를 밝혀내는 이른바 단백질 폴딩(Folding·접힘)연구.
단백질 접힘이 화두인 이유는 무엇일까. 단백질은 인체에서 머리카락같은 구조물이 되기도 하고 소화효소가 되기도 하며 모든 중요한 화학작용의 매개가 된다. 예를 들면 조혈단백질이 있어야 피를 만들고 성장호르몬이 있어야 키가 큰다.
인슐린이 만들어지지 않거나 양이 부족하면 당뇨에 걸리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고유 기능을 발휘하려면 단백질은 먼저 3차원구조를 갖춰야 한다. 이 모양에 따라 단백질은 특정 수용체와 결합해 반응한다. 제약회사들은 단백질 구조를 파악함으로써 수용체와 대신 결합하는 물질을 만들거나 결합을 촉진하는 물질을 만든다. 신약을 개발할 때 막무가내로 시행착오를 겪는 것이 아니라 설계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예컨대 에이즈연구로 명성을 높인 재미과학자 피터 김(MIT 생물학과 교수)은 이미 대학원시절 단백질 접힘에 대한 논문으로 주목을 받았다.
최근 그는 에이즈바이러스(HIV)가 이중나선 구조를 갖는 단백질(gp41)을 작살처럼 꽂아 체내세포에 침투한다는 사실을 밝히고 이 과정을 차단하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는데 『단백질 접힘이라는 기초연구에서 출발하지 않았다면 에이즈치료법에 접근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HIV와 같은 이중나선구조를 갖는 다른 바이러스의 단백질도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아직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만 보고 어떤 구조를 취할지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실험적으로 구조가 밝혀진 인체 단백질은 10만개 중 1,000개정도. 단백질이 어떻게 스스로 구조를 탐색해 접히는지 중간과정을 추적할 수 없다는 점이 한계다.
아미노산 1개가 구조를 전환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10의 13승분의1초. 아미노산 1개가 취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낮춰 잡아 3가지로 본다면 100개 아미노산으로 구성된 단백질이 취할 수 있는 모든 구조의 수는 3의 100승. 우주의 나이보다 훨씬 긴 시간이 걸려야 단백질 하나가 접혀진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현실은 기적이다. 아미노산 수십~수백개로 이뤄진 작은 단백질은 1초, 수천개 규모의 큰 단백질은 수분이면 접힘이 끝나는 기적같은 일이 생체 안에선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무언가 중간과정이 있다는 뜻이다.
때문에 단백질 접힘연구는 컴퓨터에 능한 이론화학자, 물리학자 또는 수학자들이 함께 참여한다. 충북대 화학과 강연기교수는 『결국 컴퓨터알고리즘을 찾고, 단백질의 생성과정을 역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기초이론(힘장이론 Force field) 연구에 진전이 있어야 단백질을 공학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이론 개발을 위해 단백질의 안정구조를 찾는 컴퓨터로 시뮬레이션, 변수에 따라 에너지함수의 최소값을 계산하는 에너지최소화이론을 비롯, 분자동역학모델, 신경망 유전자 몬테카를로등 컴퓨터과학에서 등장하는 각종 알고리즘이 동원된다.
단백질접힘은 50년대부터 연구대상이었지만 최근 고순도 X선을 만들어내는 방사광가속기, 핵자기공명영상장치(NMR)등 단백질 구조를 실험적으로 밝힐 수 있는 물리학적 도구가 개발되고 컴퓨터시뮬레이션연구가 진전되면서 연구는 가속화하고 있다. 게놈프로젝트가 완성돼 아미노산의 서열을 모두 밝히고 나면 이제 문제는 단백질이 어떤 구조를 갖는지가 관심의 초점이다. 생명공학연구소 유명희박
사는 『4-5년만 지나면 대충의 3차구조를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측』이라고 전망했다.
김희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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