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에다 총을 들이대더니 방아쇠를 당겨 버렸어요』서울 관악구 남현동에 사는 김모(28·버스운전사)씨는 지난해 9월 퇴근길에 경찰의 무자비한 공포탄 발사로 얼굴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밤늦게 귀가하던 김씨는 골목길에 잠복 중이던 강력반 형사 2명이 갑자기 달려들자 괴한으로 오인, 『사람살려, 강도야!』라고 외치며 정신없이 도망쳤다. 형사들은 100여㎙를 쫓아와 『서라는데 어딜 도망가느냐』며 김씨를 땅바닥에 쓰러뜨려 제압한 뒤 얼굴에 총을 들이대고 공포탄을 쏘아 버렸다.
김씨는 이로 인해 얼굴 곳곳에 공포탄 파편이 박히는 중상을 입었다. 형사들은 『김씨를 살인범으로 오인, 추적중 얼떨결에 오발사고가 났다』고 변명하며 치료비 500만원에 합의하자고 말했다. 김씨는 『신원확인도 하지 않고 항거불능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 총을 쏠 수 있느냐. 평생 「곰보」로 살게 됐다』며 항의했지만 경찰은 경미한 징계조치로 사건을 덮어버렸다.
지난해 1월 서울 금천구 가산동에서는 경찰이 검문을 피해 달아나던 차량절도범에게 실탄을 발사해 논란이 벌어졌다. 경찰은 절도범 B(27)씨의 차량이 멈춰선 후에도 B씨의 허벅지와 오른팔, 왼쪽손목에 차례로 조준사격을 가해 「과잉진압」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1998년 10월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서 검문을 피해 오토바이를 타고 달아나던 중학생이 총에 등을 맞아 숨졌다. 총을 쏜 M순경은 『정지명령을 내렸는데도 달아나 총기를 사용했다』고 말했지만 단순도주범에게 실탄을 쏜 것은 명백한 위법이었다. 같은해 3월에는 경찰이 달아나는 용의자를 붙잡으려고 서울시립대 구내에서 총을 마구 쏘아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1996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경찰은 총1,052차례 총기를 사용, 18명이 사망하고 81명이 부상했다. 특히 1998년 탈주범 신창원(申昌源) 검거 실패 이후 경찰의 총기사용 사례가 눈에 띄게 늘어나 「인권과 생명보호」보다는 「범인 검거」가 우선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경찰의 총기남용에 대해 인권단체와 전문가들은 「검거 제일주의」와 「경찰의 문약화(文弱化)」 「총기사용안전수칙 무지(無知)」 등을 원인으로 꼽고 있다. 일선 경찰이 체력저하와 제압기술 미비로 범인 검거에 어려움을 겪는 데다 신창원 사건이후 범인 검거 실패시 징계당하는 것이 두려워 총기를 사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20일부터 3일간 본보가 서울 일선서의 파출소와 형사과 소속 경찰 3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90%가 총기사용수칙을 제대로 말하지 못했으며, 40%이상이 흉악범과 대치하면 총을 쏘겠다고 응답했다. 인권실천시민연대 오창익(吳昌翼) 사무국장은 『총기를 사용한 한 경찰관의 첫마디는 「서라는데 계속 도망가잖아요」였다』며 『경찰이 총기사용수칙을 생각하기보다는 다분히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측면이 강하다』고 비판했다.
배성규기자
vega@hk.co.kr
*[사람을 사람답게] 사용수칙완화·부실훈련이 총기사고 부추겨
총기사용안전수칙 완화와 부실한 사격훈련도 총기남용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경찰은 1998년 7월 신창원 검거실패 이후 범인검거 실적을 높이기 위해 기존의 총기사용안전수칙을 크게 완화했다. 「실탄 분리휴대」 원칙을 폐지하고 실탄장전 방식도 「첫발은 빈탄알, 2·3탄은 공포탄, 4탄 이후는 실탄장전」에서 「1탄은 공포탄, 2탄이하는 실탄」으로 바꿨다.
또 간첩작전이나 살인·강도범, 무기·흉기 사용범 검거시에는 1탄부터 실탄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지만 결과적으로 총기사용을 부추기고 인명사고를 증가시킨 「검거 제일주의」 정책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사격훈련 부실도 고질적인 문제다. 32개 일선 경찰서가 몰려있는 서울의 경우 사격장이 한 군데에 불과해 특공대나 군부대 사격장을 빌려쓰는 형편이다. 경찰은 1998년 국감에서 『매년 70-210발의 사격훈련이나 고정표적 훈련으로는 실제 상황에서는 문제가 있다』고 자인했지만 아직 시정되지 않고 있다.
현재 일부 경찰이 사적으로 구입·사용중인 고가의 고무탄환이나 가스총 등을 대체품으로 지급하는 것도 총기남용을 막기위한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배성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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