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자칫하면 고등학교 3학년생들이 최남선이 기초한 「3·1독립선언문」 원문을 읽을 수 없게 된다. 「吾等(오등·우리들)은 玆(자·이)에 我(아·우리) 朝鮮(조선)의 獨立國(독립국)임과…」로 시작되는 이 감격스런 명문장중에서 첫머리부터 나오는 吾자와 玆자를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교육부는 23일 한국한문교육학회(회장 김상홍·金相洪 단국대 교수)로부터 「한문 교육용 기초한자 1,800자 조정에 관한 연구보고서」를 제출받아 이를 시안으로 공청회 등 여론수렴을 거쳐 내년 1학기부터 초·중·고교 교육에 적용키로 했다.
문제는 이 시안에 吾자와 玆자를 비롯해 지금 사용중인 기존 1,800자에 들어 있는 익숙하고 많이 쓰는 글자들이 많이 빠져 있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건국이념인 홍익인간의 弘(넓을 홍), 한민족을 지칭하는 전통적 표현인 동이족의 夷(오랑캐 이), 버드나무 楊(양), 음란물의 淫(음), 제사의 祀(사), 별주부전에 나오는 토끼의 兎(토) 등이 다 빠졌다.
반면 시안은 기존 1,800자에 없는 글자 가운데 隷(종 례) 縫(꿰멜 봉) 纖(가늘 섬) 擁(안을 옹) 殖(번성할 식) 竊(훔칠 절) 曜(빛날 요) 등 한두 단어에만 쓰이는 글자를 대거 새로 넣었다. 그러나 이는 박정희 대통령의 熙(빛날 희) 경기도의 畿( 기) 壹(한 일) 貳(두 이)자 등을 용례가 드물다는 이유로 빼버린 것과 비교하면 잘 납득이 안된다는 견해가 많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내달 관련 공청회가 시작되는대로 학계를 중심으로 치열한 논란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어문교육연구회 박광민(朴光敏) 연구위원은 『기초한자 1,800자는 누가 만들어도 논란의 소지는 있다』면서도 『1,800자에 연연하지 말고 고교 심화학습 과정에서 더 많은 한자를 가르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김상홍 교수팀이 일반인과 한문교사 53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초등학교에서 한자교육을 실시해야 한다」는 의견이 80.1%였으며, 「교육용 기초한자가 1,800자로는 부족하며 늘려야 한다」는 견해가 51.6%나 됐다.
교육용 기초한자는 1951년 상용한자란 이름으로 1,000자를 처음 도입한 뒤 68년 한글전용정책으로 폐기됐다가 72년 다시 교육용 기초한자 1,800자로 늘었다.
어문정책을 맡고 있는 문화관광부 산하 국립국어연구원은 지난해 기초한자 가운데 44자를 교체하고 200자를 추가, 「한문교육용 기초한자」 1,800자와 「국어생활용 한자」 200자로 이원화하는 방안을 교육부에 제출했다.
이광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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