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만 해도 스티브 따위는 빌의 안중에도 없었다. 빌 게이츠가 MS(마이크로 소프트)제국을 완성해 가고 있을 무렵 스티브 케이스의 AOL(아메리칸 온 라인)은 겨우 싹수가 보일랑 말랑 하는 풋내기에 불과했다. 어려웠던 시절 스티브가 빌에게 도움을 청하러 갔다가 되레 빌에게서 『너의 회사주식을 모두 사들이거나 경쟁사를 만들어 매장시킬 수도 있다』는 모욕을 당했다는 93년의 일화도 전해지고 있다.■그러나 두 사람의 격차는 급속히 좁혀진다. 빌이 컴퓨터운영체제(OS) 윈도를 과신하고 있는 사이 스티브는 인터넷이라는 신천지를 파죽지세로 점령해 나간다. 뒤늦게 빌이 인터넷시장에 뛰어들지만 이미 대세는 기울어져 있었다. 스티브는 98년 빌의 경쟁사인 넷스케이프를 인수한데 이어 올들어 AOL_타임워너의 합병으로 명실공히 세계 인터넷업계의 제왕으로 등극한다. 이 사건 며칠뒤 빌은 『개발에 전념하겠다』며 경영에서 2선 후퇴를 선언한다.
■빌과 스티브의 역전 드라마는 이른바 신경제를 창출한 미국 정보통신(IT)업계의 처절한 전쟁사중 또하나의 편린일 뿐이다. 지난 20년여년간 숱한 대전이 벌어져 유혈이 낭자했다. IBM_애플_IBM_MS로 챔피언이 바뀌고 이 과정에서 업체들간의 동맹과 반동맹의 편짜기, 어제의 동지를 오늘의 적으로 돌리는 이합집산이 난무했다. 또 컴퓨터에서 소프트웨어, 인터넷, 무선인터넷으로 전쟁의 무대가 바뀌었다.
■국내 정보통신업계에서도 경쟁 레이스가 점입가경이다. 각개전투식으로 약진해온 업체들간에 합종연횡이 불붙어 바야흐로 춘추전국시대다. 재벌그룹들은 젊은 오너후계자들이 나서 그룹의 미래사활이 걸린 전장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이제 겨우 빅뱅후 10초가 지났을 뿐』이라고 하는 미국내 디지털전쟁에 비하면 국내는 아직 빅뱅 이전의 맹아단계에 불과할지 모른다. 군웅이 출사표를 던진 IT업계에서 누가 최후의 패자로 천하평정하게 될지 흥미진진하다.
/송태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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