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지난 18일자에 한국의 낙천·낙선운동을 서울 발신 기사로 보도했는데, 그 제목이 이랬다.「인터넷 시민운동이 한국의 부패정치인들을 폭로하다」
이 제목을 그저 범상하게 보아 넘기지 못한 까닭은 「인터넷」이라는 단어 때문이다. 제목만이 아니라 기사도 「금년 4월 한국의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인터넷의 힘이 발휘되고 있다…」는 식으로 시작되었는가하면, 한 교수의 코멘트를 빌려 『인터넷으로 무장한 시민단체들이 정치인, 관료, 재벌이라는 철의 3각관계를 부수면서 일반 시민의 지원을 받는 주요한 세력이 되고 있다』고 썼다.
덧붙여서 이 기사는 『한국인들은 인구의 4분의 1인 1,000만명이 인터넷에 접속하는,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인터넷 사용자들』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의 시민단체들에 의한 부적격 정치인 추방운동이 세계적인 뉴스로서 관심을 모을 만하다는 데는 이론이 있을 수 없지만, 그것을 보도한 기사의 시각이 인터넷을 강조하고 있음은 언론종사자로서 다소 뜻밖이고, 그만큼 새롭다.
사실 「뜻밖」인 느낌을 공유하는 사람은 그러나 그리 많지 않을는지도 모른다. 신문마다 사이버 특집페이지를 상설하고, 디지털혁명을 매일같이 펼쳐보이고, 세상이 바뀌었다고 그렇게도 목청을 높이면서 스스로는 그 「세상」에 접근하기를 두려워해온 언론종사자가 몇이나 될 것인가.
어떻든, 시민운동의 힘, 또는 피플 파워의 매체로서 인터넷이 활용되고 있음이 검증된다면, 디지털문화의 측면에서 만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이론이나 사회·정치현상을 분석하는 학문에서도 획기적인 사례의 하나로 기록될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인터넷 혁명이나 디지털 세상을 반드시 좋은 쪽으로만 보는 것 같지 않은데 유의하게 된다. 최근 며칠 사이만 해도 디지털문화의 부정적 측면에 대해 나라 안팎에서 집중적으로 제기된 의견을 들을 수 있다.
『다우존스 지수가 오를 때 지구의 건강은 그만큼 악화했다』고 지적한 월드워치 연례보고서 「2000 지구 환경」은 그 첫머리를 『인터넷의 발전과 주식시장의 호황이 「참다운 세계」의 장래를 어둡게 만들고 있다』고 썼다. 16일 발표된 이 보고서는 또 『인터넷은 사람들의 의식을 가상의 세계에 집착시켜 지구환경이 처한 진면목을 못보게 한다』면서 환경에 대한 무관심을 억울해 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19일 국민경제자문회의 모임에서 인터넷시대를 언급하면서 「디지털 빈부격차」 문제를 제기했다. 『인터넷, 정보화산업의 목적은 국민을 모두 행복하게 하는 데 있다. 정보화로 인해 빈부격차와 소득 갈등이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것이다.
정보화시대에서의 빈익빈부익부 현상은 김대통령만의 걱정이 아니라 모든 인터넷 비판론의 핵심이다. 지난 17일자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한 칼럼은 아메리카온라인과 타임워너의 합병을 논평하면서 『월스트리트가 축하를 보내고 세계인구의 20%가 사이버공간으로 이주하고 있는 한편에서 나머지 인구는 물질적 궁핍에 허덕이고 있으며 심지어 세계인구의 절반 이상이 여태 전화 한통도 건 적이 없다』고 썼다.
이 칼럼은 또 『오늘의 세계는 두가지 극단적인 문명권으로 급격히 재편되고 있는데, 그 하나는 사이버 공간의 「대문 안」이고, 나머지 하나는 그 「대문 밖」 사람들』이라면서 이 두 그룹간의 「엄청난 간극」을 우려했다.
비판론은 대체로 「대문 안」에 있는 「온 라인」 그룹이 향유하는 디지털문화와 「대문 밖」에 처진 「오프 라인」 그룹의 문제에 집중된다. 디지털문화는 소수의 엘리트문화일 뿐이어서, 사회계층 구조에 변화를 불러 자본주의사회에서 쓸모없는 잉여인간군을 계속 증가시키는 결과를 낳게 되며, 결국 사회불안의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한 정치분석가의 주목할 만한 시각도 있다. 인터넷상에서 불거지는 목소리들에 대한 통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칫 사회의 건강한 질서를 파괴하는 경우가 있으며, 특히 사이버 시민운동은 초기의 소박한 단계를 벗어나 그들만의 권력을 쌓는데 인터넷을 남용할 우려가 언제나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 문화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복음」이 아니라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디지털 세상은 근본적으로 인간보다는 데이터를 더 알아주는 냉혹한 곳이다. 시민운동의 태풍같은 파괴력을 목격하면서, 정치의 「우회통로」로서의 인터넷에 대한 두려움을 말하고 싶다.
정달영 본사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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