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신좌파운동에서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는 역사학자 에드워드 파머 톰슨(1924∼1993)의 기념비적인 저술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사진)이 번역되어 나왔다. 나종일(서울대 명예) 한정숙(서울대) 유재건(부산대) 김인중(숭실대) 교수와 노서경(서울대 강사) 김경옥(서강대 박사)씨 등 역사학자들이 10년 걸려 옮긴 1,300쪽의 책이다. 창작과비평사는 1963년 나온 이 책을 비영어권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번역했다고 설명했다.책의 매력은 지은이가 1800년을 전후한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을 너무도 생생하게 복원했다는 데 있다. 톰슨은 산업사회의 위협 앞에 있는 약자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인간애가 깃들어 있는 그의 사회 분석과 활달한 문장력은 이 책을 딱딱한 사회과학서에서 벗어나게 만들었다.
「가난한 양말제조공, 러다이트 운동에 가담한 양털깎이, 시대에 뒤떨어진 수직공, 유토피아적인 장인」의 소망과 노력은 퇴영하고 무모해서 실패가 예정된 것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톰슨은 그런 생각과 행위가 그들 자신에게는 타당하고도 의미있었다고 평가하면서 그 약자들을 「지나친 멸시」에서 구해내려 했다.
그는 계급을 생산수단에 대응하는 특정한 사회구조의 의미로 사용했던 마르크스주의자들이나, 특별한 기능이나 역할을 하는 집단 정도로 평가하는 구조기능주의의 계급 정의를 거부했다. 작용과 반작용, 변화와 갈등을 고려하지 않는 계급의 정의는 의미가 없다고 본 톰슨에게 적지 않은 비판이 쏟아졌지만 그런 계급관 때문에 이 책은 훨씬 생동감을 얻는다.
책은 1780년대와 1832년 사이 영국의 노동계급 형성과정을 담았다. 프랑스 혁명 이후 성장한 민중적 급진주의 운동을 각 지역 「교신협회」와 그 배경인 페인의 사상, 끊이지 않고 남아있는 민중의 관행과 이념, 여러 분파로 갈라진 반국교 전통을 통해 살피고 있다. 또 초기 공업화 속에서 노동자들의 경험, 또 착취와 억압도 생동감있게 엿볼 수 있다. 톰슨은 마지막 3부에서 여러 형태의 투쟁과 저항, 급진파의 선거운동, 노동조합운동, 러다이트 운동, 오웬주의 운동, 선거법 개정투쟁 등을 통해 노동대중이 계급의 동질감과 다른 계급에 대한 차별성을 알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상·하 2권, 각 3만원.
김범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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