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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공동체 향한 '주희의 설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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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공동체 향한 '주희의 설계'

입력
2000.0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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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이념을 생활의 예절로 체계 잡은 「가례(家禮)」가 처음 완역되어 나왔다. 국사학자 임민혁(한성대 강사)씨가 번역한 「주자가례」(예문서원 발행)는 중국 남송의 지성이며 공자 이후 유교 사상을 성리학 또는 주자학이라는 모습으로 집대성한 주희(朱熹·1130∼1200)의 저술로 널리 알려져 있다.책은 우리 생활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관혼상제의 문제를 조목조목 다룬다. 물론 지금 실정과 다른 부분도 많다. 성인이 되는 예식을 다루는 관례(冠禮)는 거의 사라지고 없다. 상례(喪禮)도 전통 의례에 따르면 매장이 기본이어서, 최근 벌어지는 납골당 운동 등 「장례문화 바꾸기」 추세에 동떨어진다. 혼인도 지금은 서양식으로 바뀌어 책의 예법은 현실성이 없다.

제례(祭禮)의 전통이 그나마 남아 있지만 「가례」의 「정통 제사법」과 현실은 역시 크게 다르다. 제사도 종류가 여럿이지만 「구찬(具饌)」이라고 부르는 음식 차리기 법을 보면 「살아있는 짐승을 죽여 털과 피를 한 쟁반에 담고, 머리 염통 간 폐로 한 쟁반을 만들고, 기름은 쑥을 섞어 한 쟁반을 만드는데 모두 날 것으로 한다」는 따위다. 소·돼지고기를 삶아 상에 올리는 요즘 제사와 무척 다르다. 아리송하던 제사 예법을 이 책을 통해 제대로 알기 위해 책을 들춰 볼 필요는 없겠다.

하지만 「가례」는 여전히 중요하다. 예의 기본인 사회질서와 기강을 잡기 위해 조선 300여 년을 지배했던 이 사회예절에는 경애(敬愛)와 명분(名分)을 실천하라는 이념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관혼상제의 법도를 통해 선비는 수신제가(修身齊家)의 이념을 실현한다. 궁극에는 백성을 이끌어 사회와 국가의 질서를 잡는데 도움을 주려는 뜻이 담겨있다.

책은 제사 예법을 시시콜콜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간결하고 요령있는 설명에 신분 차별을 내세우지 않아 여러 계층에 두루 적용할 수 있는 보편성도 갖고 있다. 또 종법의 원리를 강조해 가족의 윤리와 결속을 중요하게 여긴다. 제사권의 엄격한 상속, 큰 집의 맏아들인 종자(宗子)의 권한과 지위를 존중해 명분과 질서를 세우려는 경향 등이다.

책을 옮긴 임민혁씨는 『주자가례를 과연 주희가 편찬한 것인지는 여전히 논란거리이고 그의 저술이 아니라는 견해도 꽤 설득력 있다』며 『전통 사회의 문화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을 것』 이라고 말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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