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향일암, 원효대사가 돌비탈에 세워주민들이 절 입구까지 참배객을 실어나른다. 봉고차를 운전하는 마을 아저씨의 음성이 탁하다. 『참 말들 안 듣데요. 얼마나 악을 썼는지 보름이 지나도 목소리가 돌아오지 않아요』.
새 천년이 시작되던 그 날, 그 곳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마을 주민 전원이 질서요원으로 나섰다. 무사히 하루가 지나갔지만 정초부터 그 마을은 통째로 목이 쉬어버렸다.
전남 여수시 돌산읍 율림리 임포마을. 앞에는 쪽빛 바다, 뒤로는 돌투성이 금오산에 둘러싸인 작은 포구이다. 향일암은 뒷산 돌비탈에 얌전하게 자리잡고 있다. 향일암은 기도도량이다. 특히 새해가 시작될 때 이 곳에서 기도를 올리면 1년간 행운이 찾아온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연초에는 차와 사람들로 넘친다.
세속적 영달을 비는 기도도량으로 그 이름이 알려지긴 했지만 향일암은 스스로의 의미와 아름다움만으로도 한껏 빛나는 곳이다. 기어서 오르기도 힘든 바위 틈에 절을 만든 이는 원효대사이다. 신라 선덕여왕 8년(659년) 원효는 이 곳에 원통암이라는 암자를 짓고 수행을 했다. 이후 절은 여러차례 이름을 바꾸고 증축, 보수되면서 현재의 이름과 모습으로 남아있다.
임포마을에서 가파른 시멘트포장길 100여㎙를 오르면 일주문이다. 유명세를 타고 절의 살림이 좋아지면서 새로 지어진 일주문은 허연 대리석 용주가 떠받들고 있다. 다시 200여㎙의 경사가 심한 길을 오르고, 큰 바위 사이로 사람 하나가 겨우 드나들 정도의 비좁은 터널을 지나면 경내가 시작된다. 이 터널은 새 일주문이 서기 이전에 충분히 그 역할을 대신했을 듯하다.
여기서부터 길은 계속 바위 사이로 돌아간다. 향일암 전체가 거대한 바위더미 위에 지어진 것이어서 그 건물을 연결하는 길은 당연히 바위 사이의 틈새로 나있다. 1,300여년의 세월과 그 사이에 오르내렸던 사람의 발길에 마모된 돌 계단은 거울처럼 반들거린다.
향일암은 현재 대웅전, 관음전, 용궁전, 삼성각, 종각, 요사채등으로 제법 규모있는 절의 풍모를 지니고 있다. 모든 건물이 바다를 향해 있다. 땅의 끄트머리여서 앞에 놓인 바다는 섬 하나 떠있지 않고 탁 트여있다. 아침이면 그 바다에서 해가 넘어가면 달이 떠오른다.
해를 바라본다(向日)는 절 이름에 걸맞게 이 곳의 일출은 한려해상국립공원 안에서도 압권으로 평가된다. 특히 풍경소리 아득한 저녁 바다에 달빛이 비치면 불국토가 따로 없다.
향일암의 상징은 거북이다. 절이 올라타고 있는 바위더미가 거북의 모습을 닮은 데다, 크고 작은 모든 바위가 거북의 등처럼 일정한 무늬를 갖고 있다. 일주문 앞을 비롯해 곳곳에서 거북의 조각을 대할 수 있다. 특히 삼성각에서 만날 수 있는 돌거북떼가 이채롭다.
책 한권 크기의 돌거북 200여 마리가 삼성각 앞과 옆의 난간을 뒤덮고 있다. 등에는 하나같이 10원짜리 동전을 지고 있다. 값 나가는 주화가 아니라 하필 10원 짜리인가? 궁금증은 쉽게 풀린다. 우리가 쓰는 주화 중 불교와 관련있는 장식을 한 것은 10원짜리 동전이 유일하다.
경주 불국사에 있는 다보탑이 새겨져 있다. 돌거북은 10원의 가치가 아니라 동전이 담고 있는 의미를 지고 있다. 다보탑의 의미가 무거워서인지 거북들은 모두 꼼짝을 않고 바다만 응시하고 있다. 그들의 눈 앞에는 벌써 빨간 꽃망울을 터뜨린 동백꽃이 바람에 흔들거린다.
여수=글·사진 권오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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