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에게 휴가는 오아시스다. 그 오아시스는 내 자신이 고갈되지 않게 정화시켜 주고, 새로운 마음으로 일에 도전할 힘을 준다. 다시 돌아오기 위한 떠남이랄까. 나는 최근 연말휴가를 이용해 방콕에 다녀왔다. 사찰과 유적지에 관심이 많아 방콕의 여러 유명 사찰을 방문했다. 그 곳에서 가장 오래된 왓수탓사원에서 한국의 단청을 그리는 미국인을 만나 유익한 대화를 나눴다.그는 우리나라 대기업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15년간 불교를 공부했고 국보급 스님에게서 탱화와 단청기법을 전수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IMF로 직장을 그만 둔 뒤 방콕으로 여행을 왔다가 우연히 왓수탓 주지스님에게서 사원에 단청과 탱화를 그려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한다.
이 작업이 끝나면 태국 전역의 사찰을 돌며 그림을 그릴 계획도 갖고 있다. 그는 마침내 그가 소망하던 삶을 살게 돼 매일 아침 희열의 눈물을 흘린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미국인으로서 한국 그림을 그리는 심정에 대해 물어봤다. 전라도 사투리에 능숙한 그의 답변인즉, 『나는 양코베긴게, 코를 팔아 여기까지 온거지, 기술적으로야 한국사람이 나보다 훨씬 뛰어나잖아요』. 그는 작업실을 같이 쓰고 있는 태국인 화가에게 가끔 영어를 가르쳐 주는데, 진도가 느려 답답한 마음에 한국말을 하면, 그 게 영어인줄 알고 열심히 따라한단다.
『그 화가 좀 맹하게 생겼잖여, 엉뱅인게』. 엉뱅이는 전라도 사투리로 맹한 사람을 부르는 말이다. 한국사람보다 더 한국적인 그와 대화를 나누며 시종일관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그가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을 과감히 내려놓고, 새로운 인생의 길을 택한데 대해 존경의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그의 용기와 인내로 마침내 얻게된 매일 아침의 「희열」은 내게도 삶에 대한 용기를 주었다.
『직장생활에서 모든 일이 쉬워지면 그 때는 떠날 때』라던 한 동료의 말이 떠올랐다. 모든 것이 다 쉬워지는 때는 지금까지 익숙해왔던 것을 놓아보내고 새로운 도전을 해봐야 한다. 흘려보내야 정체되지 않는다.
/이지은·캐나다대사관 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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