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 87조 개정·폐지에 줄기차게 반대 목소리를 내온 한나라당과 자민련이 개정 용의 또는 검토로 입장을 급선회한 것은 장강(長江)의 도도한 흐름과 같은 여론을 거스를 수 없다는 현실인식 때문이다.그동안 양당은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은 지나친 정치개입이라며 못마땅한 태도를 감추지 못했던 것이 사실. 특히 한나라당은 시민단체가 야당의원들을 무더기로 「부적격 명단」에 올린 배경에 대해 의혹의 시선마저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시민단체의 활동이 정치권 불신 풍조와 맞물려 여론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데다 총선을 앞두고 무조건 반대만 하다가는 자칫 시민단체의 반발을 불러 올 수 있다는 인식이 「터닝 포인트」를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전날 선거법 87조 폐지를 여당에 지시하는 등 국민회의가 선공으로 나오는 마당에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야만 개혁세력으로 명분을 찾고 제대로 협상에 임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후문.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어차피 이슈로 떠오를 것이 분명한데, 머뭇거리다는 반개혁세력으로 명분을 잃는 것은 물론 협상 테이블에서 우리당 입장을 말하기도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자민련의 한 관계자는 『대세가 이미 돌아선 데다, 공동여당 공조 차원에서 입장을 바꿀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양당은 개정입장은 밝혔지만, 향후 선거법 협상과정에서 시민단체의 선거운동 참여 범위와 기간 등에 제한조건을 제시하는 등 최대한 「차단막」을 쌓으려고 나설 것으로 보인다.
박천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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