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한미 양국대통령의 21세기전망을 비교해 볼 기회가 생겼다. 좀 엉뚱한 자리를 통해서였다. 김대중대통령은 17일 저녁 방영된 MBC TV 오락프로그램 「21세기위원회」에 나와 21세기를 이야기했다. 빌 클린턴 미대통령의 21세기 이야기는 지난달 22일 CBS방송 시사프로 「60분」의 회견때 들은 적이 있다. 「지는 해」라서 그랬는지, 클린턴의 회견은 별다른 주목을 끌지 못했다.김대통령의 MBC출연은 이미지 「업그레이드」측면에서는 대단한 성공작이었다. 대통령은 10년 이상은 젊어 보였다. 연보라 셔츠에 남색 체크 재킷, 지나칠 정도의 파안대소, 아마추어 코미디언을 무색하게 하는 재담 등이 힘을 합친 결과다.
그러나 이 프로는 두 가지 주제였던 「젊음」과 「21세기」 가운데 한 가지에서만 성공을 거두었다는 평가가 보다 정확할 것이다. 즉 대통령의 젊음을 부각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가 때때로 심각한 표정으로 돌아와 강조하고자 했던 21세기의 메시지를 담는 데는 역부족이었다는 얘기다.
물론 김대통령이 틈만 나면 얘기하는 지식기반사회의 도래와 이에 대비하기 위한 신지식인 준비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이런 메시지를 전하려면 좀 더 진지한 포맷을 택했어야 했다고 본다. 21세기를 주제로 한 대통령의 메시지는 「21세기위원회」의 성격에 비추어볼 때 다소 무거웠다. 마치 클린턴대통령이 「데이비드 레터맨 쇼」나 「오프라 윈프리 쇼」에 나와 21세기를 강의하는 셈이었다.
총선이 석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양대 공중파방송 중 하나인 MBC가 1시간이 넘는 무료전파를 청와대에 선사한 것도 지나쳤다. 대통령은 집권당총재가 아닌가. 지나친 프리미엄이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야당은 지나치게 관대하다. 아니 억울할지도 모른다. 김대통령이 지난 연말 여러 가지 스캔들의 여파에 밀려 송년회견조차 건너 뛰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보면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날 프로에서 김대통령이 피력한 21세기 예측과 전망은 분명히 경청할만한 구석이 있다. 그는 닥쳐오는 세기가 지식기반의 사회이며 우리 민족이 열심히 준비한다면 일류국가는 문제없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혁명적 변화」를 몰고올 새로운 세기를 맞아 젊은이들이 준비해야 될 사항으로 세 가지를 꼽기도 했다. 첫째가 개척정신과 모험정신, 둘째가 신지식인이 되기 위한 능력배양(인터넷, 영어구사력등), 마지막으로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의 철학을 기르는 일이었다.
클린턴대통령도 CBS와의 회견에서 21세기를 「혁명의 세기」로 규정했다. 그는 새로운 세기의 기술·정보혁명이 엄청난 생산성 향상을 가져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면서도 이 과정에서 국가간, 또는 개별 국가 내에서 정보와 기술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간의 격차가 증가할 것이라는 데 우려를 표시했다. 나름대로의 대안도 제시했다.
피할 수 없는 대세인 세계화의 대열에서 뒷걸음을 치지 말고,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정보와 정보기술을 습득할 기회를 부여해 세계화의 과실을 함께 나눌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클린턴과의 질의응답도 「21세기위원회」 못지 않은 재미를 선사했다. 『대통령께서는 복제(Cloned)되고 싶습니까』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하기를 원치 않습니다(웃음)』, 『(대통령의 3선 금지를 명문화한) 22차 수정헌법을 개정할 수 있다면, 그럴 용의가 있습니까』 『나이도 젊고 신체도 건강하니 하려고 하면 할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저같은 사람이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그것(연임규제 조항)이 있는 게 아닐까요(웃음)』
21세기를 주제로 한 클린턴의 회견은 형식이나 내용면에서 김대통령의 「출연」보다 한결 진지했다. 데이비드 레터맨과 타운홀 미팅의 혼합을 꾀한 청와대의 노력은 참신한 시도이긴 했으나, 타이밍과 형식면에서 적지 않은 구설수를 낳고 있다.
이상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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