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이외 단체의 정치참여 금지를 규정한 선거법 87조 폐지 문제가 다시 살아났다. 여야가 15일 선거법 협상에서 시민단체의 강력한 요구에도 불구,『없었던 문제』로 하기로 했던 이 조항이 선거법 전체가 개악 논란에 휩싸이면서 다시 선거법 재협상의 주테마로 부상한 것. 이번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직접 나섰기 때문에 여야가 적당히 얼버무렸던 이전과는 상황이 판이하게 달라졌다. 김대통령은 17일 박상천(朴相千)총무 등 국민회의 당지도부에 『노조 등의 선거운동은 허용한 반면 시민단체 등은 선거운동을 하지 말라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고 위헌이 될 수도 있다』며 선거법 87조의 폐지를 지시했다.여권이 「87조문제」를 다시 들고 나온 것은 이 조항이 지닌 미묘한 정치적 성격 때문이다. 『개혁요소가 실종됐다』는 비판이 쏟아진 개정선거법에 개혁이미지를 부각시킬 참신한 「재료」가 될 수 있고, 이미 힘의 대결상태로 치달은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갈등을 방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초 여권 일각에선 유사 시민단체의 선거개입을 차단하기 위해 「비영리단체 지원법」에 규정된 「검증된」 시민단체만을 포함시키는 방안도 거론됐지만 없던 일이 돼버렸었다. 그래서 이번엔 『국고지원을 받는 시민단체만 허용할 경우 한나라당이 받을리 만무한 만큼 뒷말의 소지가 없게 아예 폐지하자』는 것이 박상천 총무의 설명.
그러나 협상과정에서 87조가 개정 또는 폐지쪽으로 결론이 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자민련은 이날 87조 개정에 공식적으로 반대했다. 이규양(李圭陽) 부대변인은 논평에서 『시민단체의 활동은 선거문화 개선과 정치개혁을 위한 보조적인 기능에 국한돼야 하며 선거를 주도하려 해선 안된다』고 밝혔다.
한나라당은 『백지상태에서 재협상을 하는 만큼 87조문제도 포함된다』는 원칙적인 입장을 밝혔지만 속내는 탐탁지 않아 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당장 반대하면 반개혁 정당으로 비난을 받을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협상테이블에는 앉았지만 관변단체들이 난립해 시민단체의 너울을 쓰고 활동할 경우 야당은 당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팽배한 것. 한나라당 내부에선 『여론의 추이를 보며 양보하더라도 최대한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강하다.
/이태희기자taehee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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