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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의 산실] (2)계간 '문학과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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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의 산실] (2)계간 '문학과 사회'

입력
2000.0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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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항쟁의 결과로 그 이듬해에 새 정부가 들어서고 잡지들의 창간이나 복간이 허용됐을 때, 「문학과 지성」 동인들은 8년 전에 폐간된 이 잡지를 복간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제자 세대를 격려해 새로운 잡지를 만들도록 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내렸다.「문학과 지성」이 1970년대의 한국 문단에서 누렸던 아우라(Aura)를 생각하면, 이 잡지의 동인들이 자신들을 상대적으로 주변화시킬 문학적 신진대사 쪽으로 마음을 굳힌 것은 이례적인 결정이라고 할 만했다. 「문학과 사회」의 창간 동인이었던 평론가 여섯 사람-권오룡, 성민엽, 임우기, 정과리, 진형준, 홍정선-은 흔히 「문지 2세대」라고 불린다. 「문지 2세대」는 「문학과 사회」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문학과 지성」의 네 동인 김병익, 김주연, 김치수, 김현을 「문지 1세대」로 치고 그 제자 세대에게 부여된 저널리스틱한 호칭이다.

80년에 「문학과 지성」이 폐간되고 88년에 「문학과 사회」가 창간될 때까지 여덟 해 동안이 「문지」의 역사에서 완전한 공백기였던 것은 아니다. 김현의 서울대 불문과 제자들인 시인 이성복, 소설가 이인성, 평론가 정과리는 82년에 「우리 세대의 문학」이라는 무크를 창간해 「문학과 지성」을 잇기 위한 작업의 기지개를 켰고, 그 무크는 제5호부터 「우리 시대의 문학」으로 제호를 바꾸며 87년까지 여섯 호가 나왔다.

그것은 80년 여름에 「문학과 지성」과 함께 폐간된 「창작과 비평」이 88년에 복간될 때까지 「한국 문학의 현단계」라는 무크를 통해 그 살벌한 80년대를 견뎌냈던 것과 비슷하다. 「우리 세대의 문학」(「우리 시대의 문학」)은 4호부터는 동인이 권오룡,성민엽,정과리 등 평론가들로만 구성돼 옛 「문학과 지성」과 편집 체제가 더 흡사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편집 동인들의 변동은 있었지만, 「문학과 지성」 「우리 세대의 문학」 「우리 시대의 문학」 「문학과 사회」는 문학이념적, 인적 연속성을 유지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학과 사회」의 이념적 지향이 「문학과 지성」의 판박이라고는 할 수 없다. 「문학과 지성」의 지향이 비교적 고전적 자유주의 쪽에 쏠려 있었던 데 견주어, 「문학과 사회」는 그 이념적 스펙트럼이 한결 넓었다. 그 제호가 명시적으로 말하고 있듯, 「문학과 사회」는 문학과 사회가 관계 맺는 방식에 민감했다.

88년 봄 창간호는 「사회 변화와 문학적 인식」이라는 주제 아래 임우기 성민엽 정과리 홍정선의 글을 싣고 있는데, 그 글들은 다양한 관점과 관심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자본주의 비판을 공유하고 있다. 그 다음 호에서도 이 잡지는 「마르크스 이해의 세 가지 차원」이라는 기획을 통해 원전 비평과 이념 분석 그리고 한국적 수용 양상을 통한 마르크스의 이해 지평을 짚어봄으로써 확장된 이념적 관심을 드러냈다.

「문학과 사회」의 지난 호들을 되돌아 보는 것은 세기말의 한국에서 떠돌았던 문학적, 문화적 담론들을 되짚어보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89년 겨울호의 「80년대의 의미」, 91년 봄호의 「세계 변동을 보는 우리의 눈」, 92년 겨울호의 「대중 문화, 그 불안한 가능성」, 94년 겨울호의 「한국 지식인의 위상과 역할」, 97년 여름호의 「한국 문학: 걸어온 길, 나아갈 길」, 98년 봄호의 「21세기의 전망: 무엇을 할 것인가」 같은 특집들이 그렇다.

이 특집들에는 반드시 「문지적(文知的)」이라고는 할 수 없는 필자들, 예컨대 문학 평론가 백낙청이나 최원식, 경제학자 정운영, 철학자 홍윤기 같은 이들도 참가하고 있다. 이 잡지의 90년 겨울호를 보는 것은 가슴아프다. 거기에는 그 해 여름에 48살의 나이로 타계한 평론가 김현의 문학과 삶이 벗과 제자들의 붓을 통해 그려지고 있다.

지난 12년 동안 「문학과 사회」의 편집 동인 구성에는 약간의 변동이 있었다. 몇 사람이 나갔고, 그 빈 자리를 박혜경, 김동식, 우찬제, 이광호 등의 젊은 평론가들이 채웠다. 이 네 사람의 비평가는 아마 「문지 3세대」를 구성하게 될 것 같다.

「문학과 사회」는 어느 모로 보나 지식인 잡지다. 그리고 이 지식인 잡지가 출판사 문학과 지성사와의 유기적 협조 아래 「문학 권력」을 추구한다는 비판도 있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권력 의지에서 자유로운 개인이나 집단은 드물 테니까 말이다. 확실한 것은 이 잡지가 지난 10여 년 동안 한국 문단의 전위적 논의를 주도해 왔고, 가장 빼어난 작가들을 배출해 왔다는 것이다. 고종석

■「창간사」에서

『오늘의 상황에서의 문화 행위가 체제 유지적 논리의 허구성을 직시하고 변혁에의 다양한 열망을 보다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논의의 절차를 통해 사회와 문화발전의 지속적인 힘으로 매개시켜주어야 함을 우선적인 소임으로 갖는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문학은 사회 밖에서 사회를 비판적으로 해석하거나,

또는 다른 방식을 통해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각인되고 인각을 남기는 관계에 있다. 문학은 사회 속에 존재하며 사회는 또한 문학 속에서 스스로의 존재와 구조를 발견해낸다. 문학은 스스로를 반성하면서 사회를 비판하고, 이러한 반성과 비판을 통해 스스로를 변화시켜나가는 동시에 사회변혁의 주요한 동인이 된다. 따라서 우리는 문학과 사회의 동시적 포괄 관계를 통해 한국 사회의 진정한 변혁의 전망을 추구하고자 한다.』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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