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익연합 라빈 근소차 눌러「안정속의 변화」. 급진적 좌익 색채에서 온건 개혁주의자로의 변신을 꾀한 집권 중도좌파연정의 리카르도 라고스(62) 후보가 16일 임기 6년의 칠레 대통령에 당선됐다.
라고스는 이날 실시된 결선투표에서 총 유효득표수의 51.3%를 얻어 48.7%에 그친 보수우익연합의 야당 칠레동맹 호아킨 라빈(46) 후보를 2.6% 포인트의 근소한 차이로 누르고 대권을 거머쥐었다.
라고스는 당선 직후 『좌익 이미지를 어떻게 희석시키느냐가 승부의 최대 관건이었다』고 말할만큼 보수·중도화에 강한 집착을 보였다. 지난해 12월12일 실시된 1차 투표에서 드러난 유권자의 안정희구 성향을 어떻게 끌어안느냐가 이번 결선투표의 승패를 가름지었기때문.
상대 후보인 라빈이 예상을 깨고 결선 투표까지 오르는 선전을 펼친 것도 중산층의 안정심리를 적절히 활용한 덕이다.
라고스의 대통령 당선은 국내적으로는 살바도르 아옌데 전대통령이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군사 쿠데타로 피살된 이후 27년만에 처음으로 좌파 인사가 직접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의미를 갖는다. 남미 전체로는 지난해부터 불기 시작한 좌파의 물결을 사실상 완성시켰다는 평가다.
전통적으로 좌파 성향이 강한 칠레 유권자들이지만 경제에 실패한 집권 좌파연정이 다시 국민의 신임을 얻었다는데서 남미 좌파 세력의 힘을 느낄 수 있다.
라고스의 당선은 사실 결선 투표에서의 승리보다 라빈의 선전이 오히려 뉴스가 될만큼 라빈은 유력한 대선주자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에두아르도 프레이 현 대통령의 집권이후 20년만에 최악의 경기침체가 찾아들면서 순조로와 보이던 대선가도에 제동이 걸렸다.
아시아의 경제위기, 브라질의 헤알화 평가절하, 멕시코와 아르헨티나의 경제난 등으로 칠레의 주수입원인 원자재 수출이 결정적 타격을 받은 탓이었다.
오는 3월11일 취임하는 라고스는 『현재의 경제정책 틀 안에서 실업과 빈부격차 문제를 해결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당선소감을 말했다.
안정과 개혁을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고민의 일단을 내보인 것이다. 피노체트 철권통치가 절정을 이뤘던 80년대 초 야당인 「민주연맹」(Democratic Alliance) 총재를 지낸바 있는 라고스가 현정부의 신자유주의 경제노선을 어떻게 이어갈지 관심거리다.
프레이 현 대통령은 1994년 기독민주당 후보로 나와 1차 투표에서 당선되었으나 이후 총선에서 실패하면서 라고스가 소속된 민주당연합과 사회당 등과 연정을 실시했다. 야당인 보수우익 연합은 친피노체트 계열의 민주독립 연맹과 국가개혁당 등이 참여했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피노체트 귀향길 '먹구름'
검진의사 이의제기…佛건강기록 공개요구
칠레의 전 군부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84)의 「귀향(歸鄕)」이 벽에 부딪혔다. 스페인 프랑스 등에서 영국 정부의 구금해제에 항의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칠레 대선에서는 반 피노체트 투쟁의 선봉장이었던 리카르도 라고스가 새 대통령에 당선됐다.
프랑스는 16일 이미 피노체트의 재검진을 요구한 스페인과 국제사면위원회(AI)에 이어 그의 상세한 건강기록을 공개할 것을 영국 정부에 요구했다.
엘리자베드 기구 프랑스 법무장관은 이날 RTL 라디오와의 회견에서 『영국 정부는 민간 의료팀이 작성한 피노체트의 건강 기록중 많은 부분을 공개하지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더욱이 피노체트의 건강진단에 참여했던 그림리 에번스 옥스퍼드대 교수는 이날 『건강이 악화한 피노체트가 회복될 가능성이 적기는 하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며 잭 스트로 영국 내무장관의 구금해제 결정에 이의를 제기,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스트로 장관은 18일 피노체트에 대한 공식입장을 밝힐 예정이며 이때 그의 귀국을 허용할 것으로 보인다.
피노체트에게 설상가상격인 것은 칠레 대선 결과. 라고스 대통령 당선자는 피노체트의 독재통치시절 반체제 활동으로 투옥까지 당했던 인물.
그는 대선기간중 『법관의 재판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것이 대통령의 임무』라며 피노체트를 법정에 세우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에두아르도 프레이 현 대통령도 각종 인권유린 혐의로 56건의 소송에 휘말린 피노체트를 국내법에 따라 재판받을 수 있다며 처벌의지를 피력해왔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피노체트가 종신 상원의원의 신분에 따른 면책특권을 감안할때 그가 법정에 서게 될지는 의문시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권혁범기자
hb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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