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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철 관전노트] 복기후에 뒤바뀐 승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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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철 관전노트] 복기후에 뒤바뀐 승패

입력
2000.0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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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한국기원 2층 대회장. 제1회 흥창배 세계여자바둑 선수권대회 준준결승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하오 5시께 중국의 강호 펑윈 9단과 한국의 신예 조혜연 2단의 대국이 거의 끝났다. 반집 아니면 한집을 다투는 미세한 형세. 마지막 공배를 흑이 메웠다. 사석을 들어 내고 각자 집을 지은 결과, 백을 쥔 펑윈의 반집승. 펑윈은 『휴』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조혜연은 머리를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못하고 있다.바로 이때 뜻밖의 사태가 발생했다. 옆에서 관전하던 윤기현 9단이 조혜연에게 『계가가 잘못된 것 같다』며 복기를 해보라고 종용한 것. 그래서 복기를 했더니 이게 웬일인가. 이번에는 거꾸로 흑이 1집반을 이긴 것이 아닌가. 사실인즉 조혜연이 너무 흥분한 나머지 계가 과정에서 돌을 흐트리는 바람에 돌이 밀려서 흑집이 백집이 되었던 것. 『거봐, 계가가 잘못됐지』 윤 9단은 득의의 미소를 지었고 반집승의 흥분에 젖어있던 펑윈은 아연실색. 조혜연은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지 멍한 표정이었다. 결국 이 대국은 조혜연의 1집반승으로 결론이 났다.

그런데 만일 당시 두 대국자가 백의 반집승을 인정하고 서로 자리에서 일어 났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한국기원 바둑룰에는 「승패에 관해서 한 쪽에서 이의가 있으면 그 자리에서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고 돼 있으므로 펑윈의 승리가 굳어졌을지 모른다. 결국 윤9단이 자칫 도둑 맞을 뻔한 승리를 지켜준 것으로 모처럼 한국팀 단장 노릇을 톡톡히 한 셈이다.

하지만 이번 해프닝에 대처하는 한국팀의 처리 방식은 절차면에서 너무 거칠었다. 대국 결과에 대한 이의 제기는 입회인이나 대회 진행 관계자에게 먼저 알린 후 대국 상대방과의 충분한 의견 교환을 거쳐서 행해지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당시 입회인은 사건 현장에 없었고 대국 상대방인 펑윈은 말도 전혀 통하지 않고 한국식 계가법에도 서툴러서 약간 어리둥절한 상태였다. 펑윈 입장에서 보자면 바둑이 끝난 후 10여명의 한국인들이 바둑판 주위를 빙 둘러 싸고는 저희들끼리 무어라 한참 수근거리다가 갑자기 복기를 하라고 하더니 자세한 설명도 없이 승부가 뒤바뀌었다고 했다. 펑윈으로서는 순간 무슨 사기를 당하는 기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이런 경우 해결방안을 명확하게 제시한 명문규정이 없다는 점이다. 91년 10월 개정된 한국기원 바둑룰은 기술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지만 대국 진행중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분쟁의 처리방식에 대해서는 일일이 언급하지 않고 「한국기원 심사위원회의 판정에 따른다」는 매우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현행 바둑룰이 이같이 모호하게 규정되어 있다 보니 현역 프로기사들조차 특정 상황의 처리에 대해 통일된 의견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새천년을 맞아 바둑이 지금보다 한 차원 높은 본격적인 두뇌 스포츠로 발돋움하려면 차제에 바둑룰의 대대적인 정비 작업이 필요할 것같다. /박영철 바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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