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 선거법 협상이 마무리된 16일, 국회는 말 그대로 전쟁터를 방불케했다. 당은 당대로, 의원들은 의원들대로 명분도 체면도 저버렸다. 오직 제 밥그릇을 챙기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모습들이었다.강행처리와 물리적 저지로 맞서던 여야는 이날 오전 「소선거구제+전국단위 1인2투표제」로 일단 합의점을 찾는 듯 했다. 물론 속내에는 의원정수 현행 유지, 선거보조금 50% 인상, 온갖 편법을 동원한 선거구 살리기 등 제각기 입맛에 맞는 반찬들이 숨어 있었다.
선거구 조정으로 당장 지역구가 날아가게 된 의원들의 읍소와 협박이 이어졌지만 어쩔 수 없는 「진통」으로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날 밤9시에 열린 선거법 표결을 위한 본회의에서 마침내 사단이 벌어졌다.
자민련 김동주(金東周)의원이 국민회의와 한나라당이 선거구통합지역 중 예외로 인정한 원주, 경주, 군산, 순천 등을 걸고 넘어진 것. 김의원의 문제제기는 선거구 조정으로 불이익을 당한 다른 의원들에게 불을 질러 본회의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돌변했다. 정회를 거쳐 밤 11시53분 다시 회의가 열렸지만 고성과 거센 항의가 계속됐다. 당황한 신상우(辛相佑)의장은 자정을 15초 넘겨 겨우 회기연장의 방망이를 두들기는 「위법」을 저지르기도 했다.
애당초 정치개혁으로 내세운 원칙을 포기한 국민회의, 실무선에서 합의해놓고도 모양갖추기를 위해 반대표결하려던 한나라당, 나눠먹기에서 소외됐다고 표결을 저지한 자민련. 98년 12월 「정치구조개혁입법특위」라는 거창한 이름의 기구로 시작된 정치권의 정치개혁은 이렇게 끝나고 말았다.
박천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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