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대통령 임기 5년동안 꾸준히 같은 장관자리를 지키는 사람은 진흙 속에서 금반지 찾기보다 더 힘들다.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 임기동안 이 영광을 누린 사람은 공보처장관이었던 오인환(吳隣煥)씨 단 1명뿐이었다.최근 사표를 내고 그 사표가 수리돼 국정원장직을 떠나게 된 천용택(千容宅)씨의 사건은 한국정치발전을 연구하는 비교정치학자들에게 두가지의 중요한 의문을 제기한다. 왜 한국각료들은 심심하면, 걸핏하면, 재수없으면 이구실 저구실 밑에서 각료자리를 박탈당하는가 하는 것이 첫째 의문이다.
두번째 의문은 언제 자리를 떠나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각료들이 제대로 장관으로서의 책임을 지고 능력있는 지도자로서 최선을 다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천씨의 경우는 예전 행정부 때처럼 심심하면, 또는 걸핏하면 치러졌던 각료경질의 경우는 물론 아니다. 신문기사와 다른 소식통을 조사해보니 소위 『적절치 않은 시기에, 적절치 않은 공간에서, 적절치 않은 내용』을 떠뜨린 것이 불행을 불러온듯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국의 정치민주화와 국가발전이란 관점에서 곰곰히 생각해볼 때 천씨의 사건은 위에 제기된 두 의문을 더욱 신중하게 따져보아야만 한다는 강박감을 우리에게 가져온다.
각료임명은 전문성 70%, 정치성 30%를 고려해 이뤄져야 한다. 클린턴 미 대통령의 예를 들면 국무장관으로 선택된 최초의 여성각료 올브라이트는 정치성과 전문성을 다 갖춘 인물이었다. 그런데도 여성 국무장관을 가볍게 보고 공개석상이나 개인만찬모임에서 공공연히 그를「하프브라이트(Halfbright·반똑똑이)」로 부르는 남자전문가들을 많이 목격했다.
신문기자들도 이런 표현을 서슴지않고 다루곤 한다. 그가 중량급 국무장관이라기 보다는 경량급이 아닌가 의문을 갖는 정치학자들도 많이 만난다. 그러나 그는 클린턴 대통령과 더불어 만 4년의 임기를 끝낼 것이다. 그리고 미국 정치역사의 전통은 가족이 중병에 걸렸거나 본인이 중대한 사유가 없는 이상 대개는 임명을 받은 날로부터 대통령 임기가 완료되는 날까지 각료로서의 수명을 같이한다. 4년동안 복잡한 스캔들, 또는 지독한 뇌물을 받은 경우 등을 제외하고는 사소한 실수에서부터 큰 실수까지 대통령은 눈을 질끈 감고 포용력으로 감싼다.
이미 지난해의 결정이었고 시간이 지났지만 천씨의 경우로 되돌아가보자. 과연 정치헌금에 대해 비공개석상에서 자신의 의견을 털어놓은 것이 그다지도 지대한 과오였을까. 사직서를 썼다고 해서 그것을 그대로 수리했어야만 했을까. 물론 천씨의 발언 가운데 민감한 부분만을 크게 극대화해 우물가 아낙들이 옆짚 추문을 쑥덕거리듯 정치화시킨 야당의 행위는 품격이나 자질면에서 D학점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통령에게 「누를 끼치는」실수를 계기로 임명된 지 얼마되지 않은 국정원장을 갈아치워야 했던 각료경질의 한국적 전통은 F학점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한때 짧게 자주 바뀌었던 통일부장관 임명 역사를 돌이켜보면서 『어린애들 양말 갈아신는 속도보다 빠른』 각료경질을 질타한 적이 있다. 옆나라 일본도 한때는 내각이 자주 바뀌어 총리 이름을 제대로 외기도 힘들었던 때가 있었다. 나라마다 정치역사와 문화가 다른 만큼 단순히 미국과 한국을 비교하는 것도 무리는 있다. 하지만 단점 허점 실수를 관용하며 현장관이 한 직책을 고수케 할 경우 그의 지도능력과 업적은 극명하게 투명성을 나타낸다. 따라서 각료들은 이를 악물고 열심히 뛰고 대통령 퇴임과 더불어 역사의 판단을 기다리며 만족한 심정으로 정치의 뒷장으로 사라진다.
그 밑에서 각료를 보좌하며 때로는 훈련시키기까지 했던 관료들은 4년마다 찾아오는 대통령취임 각료임명 각료훈련 각료퇴임의 정해진 전통 속에서 정치파동에 좌우됨이 없이 느긋이 그들의 업무를 수행해나간다. 일을 배울 겨를도 없이 장관직을 떠나야 하는 고리가 21세기에는 깨끗이 잘려나갔으면 좋겠다.
/오공단-미 국방연구원·브루킹스연구소 시니어펠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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