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근리사건 한미 대책단의 공동기자회견에서 미국측 단장인 칼데라 미육군부장관은 사건에 대한 미국측의 처리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했다.칼데라장관은 11일 회견에서『당시 미군이 무고한 생명을 의도적으로 앗아갔다는 주장을 규명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라고 말해 양민학살의 「의도성」 여부가 사건 실체판단의 기준이 될 것임을 시사했다. 얼핏보면 그의 발언은 당시 미군의 양민학살이 정당한 행동이었는가를 철저히 규명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발언의 숨은 뜻을 찾는데는 그리 긴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 점(의도성 여부)이 바로 노근리사건을 다른 사건들과 구별짓게 하는 특징』이라는 주장 속에서 다른 사건들에 대한 조사확대를 원치 않는 미국의 속내를 어렵지 않게 간파할수 있다. 『무고한 생명의 손실이 있었던 모든 사건을 조사할 수는 없다』는 대목 역시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해 준다.
여기에 미국측이 전쟁 초기 낯선 땅, 낯선 사람들 자체가 미군에겐 공포였다는 점을 부각시키려 한다면 「의도성」의 강조는 오히려 『양민학살이 불가피한 선택일 수도 있으며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 빌미가 될 수도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학살이 자행된 지 50년이 지난 지금 노근리로 대표되는 전쟁의 아픈 기억을 되새기는 것은 책임소재를 따지기 위함이 아니다. 미국은 과거에 대한 철저한 각성을 통해 제2, 제3의 노근리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역사적 소명이 우리 국민의 눈길을 노근리로 향하게 하고 있음을 깊이 새겨야 한다.
김승일 정치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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