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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공교육 斷想 - 전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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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공교육 斷想 - 전성인

입력
2000.0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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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이한 지도 벌써 며칠이 지났다. 새 천년을 맞이한다는 떠들썩함이나 Y2K의 공포가 빠르게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버린 지금, 이제는 차분한 마음으로 앞날을 설계할 때가 되었다.우리가 IMF 관리체제에 편입된 이후 가장 주력했던 부분은 제도개혁이었다. 그러나 제도 못지 않게, 아니 제도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이다. 그 사회가 어떤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고 또 후손들을 어떻게 길러내는가에 따라 주어진 제도의 현재 및 미래의 성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결국 궁극적으로는 교육이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교육은 어떠한가. 애석하게도 우리나라의 교육은 완전히 실패하고 있다. 특히 공교육의 실패는 문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하다. 공교육이 실패하면 사회는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다.

왜냐하면 어떤 사회가 스스로를 재생산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체계적인 방법이 공교육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가 접한 미국의 한 공립 초등학교의 모습을 통해 미국의 공교육에 대한 지극히 단편적이고 개인적인 느낌을 몇 가지 소개해 보고자 한다.

첫째, 미국 초등학교는 숙제를 엄청나게 부과한다. 한국에서 가장 숙제가 많다는 사립 초등학교의 약 3~5배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숙제의 상당부분은 독서이고 시험도 수시로 보고 시험성적도 공표한다.

둘째, 지원시설과 인력이 풍부하다. 공립학교인데도 불구하고 학교내에 공부방 수준을 넘어 도서의 출납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도서실이 있고 컴퓨터실도 있다. 교장선생님의 주된 임무중 하나는 하교시에 무전기를 들고 아이들이 통학버스에 제대로 타는지를 현장에서 감독하는 것이다.

세 번째 특징은 조금 별나다. 수학문제중에 예를 들어 75원 어치의 물건을 사고 100원을 내면 거스름돈이 얼마인가라는 문제가 있었다. 뺄셈을 하면 간단할텐데 교과서에는 물건값 75원에 5원과 10원을 차례로 더해 100원이 되도록 한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이런 식으로 거스름돈을 계산하는 것은 미국에서는 일상적이지만 교과서에서 직접 이 내용을 확인하기는 처음이었다.

이제 첫째 특징부터 다시 살펴보자. 요새 우리나라의 공립학교에서는 공부를 시키지 않는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학교는 놀이를 통해 무엇인가를 스스로 습득하는 곳이란다. 그래서 그런지 숙제도 많지 않고 시험도 잘 안본다. 석차도 없다. 이에 비해 이곳 학교는 시쳇말로 「학생을 잡을」 정도다. 그래도 아이들은 학교를 좋아한다. 신기한 일이다.

둘째 특징은 언뜻보면 돈과 관련된 것이다. 따라서 돈만 있다면 문제는 깨끗하게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무전기를 들고 뛰어다니는 교장 선생님의 모습은 돈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유인체계가 이 사람에게 무전기를 들고 뛰어다니지 않으면 안되게 만들었을까.

셋째 특징은 공교육의 본질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공교육이란 사회가 장차 그 사회의 구성원이 될 후손에게 사회생활에 필요한 평균적인 지식을 효과적으로 전달시켜주는 장치이다. 따라서 공교육에서 다루는 교과과정은 사회 구성원의 평균적인 지적 수준을 염두에 두고 편제되어야 한다. 즉 뺄셈이 어떤 부류의 사람에게는 너무 어려운 것이라면 덧셈만으로 거스름돈을 계산하는 방법도 가르치는 것이 공교육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미국의 초등학교를 보고 공교육이 실패하고 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이것이 사대주의의 소산일까. 【미 케임브리지시에서】

/전성인·홍익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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