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연일 터져나오는 과거사 문제로 곤혹스럽기 짝이 없다. 한국전쟁 당시 형무소 재소자 집단처형과 경북 일원의 주민 200여명 수장사건에 군이 개입했다는 아픈 과거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수천명을 집단 처형하거나 예비 검속된 주민들을 군함에서 사살한 뒤 돌을 매달아 바다에 던지는 등 지금 관점에서 보면 상상할 수 없는 잔학상이 벌어졌던 것이다.이 사실이 보도되자 6·25때 가족이 실종된 것으로 알고 있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 가족도 처형됐거나 수장됐을 가능성이 큰데 명단을 확인할 수 있냐』고 문의해오고 있다.
당시 수장을 명령했던 해군 관계자는 『자책감으로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정부가 진상규명에 나서면 참회하는 심정으로 증언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정작 국방부는 남의 일 대하듯 별무반응이다. 『처형과 수장이 벌어졌다는 1950년 7월초는 전쟁중이어서 기록도 거의 없는 실정이다. 하루가 다르게 전선이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공산주의자들에게 협력한 자들을 처형한 것은 아마도 불가피한 조치였을 것이다』라는 정도가 고작이다.
더 나아가 『정치적 문제를 상부의 명령에 따른 것일 뿐인데 지금와서 50년전의 일을 들춰내 어쩌자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말도 하고 있다. 결국 기록이 없어 진상규명도 못하고 상부 지시에 따른 것이니 책임도 없다는 말이다. 기록이 없다 해서 역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같은 이유로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작업을 게을리해서도 안된다. 지금이라도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데 노력하는 것이 억울하게 죽은 원혼과 살아있는 가족들의 한을 풀어주는 길이 아닐까.
황양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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