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눈물은 또 다시 비가 돼 고모령을 적시고 객석을 파고든다. 월남전의 상흔을 안고 어찌됐건 살아보려던 청년은 몹쓸 운명에 휘말려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야만 한다. 한국 성인이라면 한번은 접했던 이야기들이 구구절절한 뽕짝 가락을 타고 살아 온다.악극 부활의 쌍두마차 MBC와 SBS의 악극 맞대결이 벌어졌다. SBS와 극단 가교의 악극 「비내리는 고모령」, MBC의 신파극 「아버님 전상서」. 『손수건은 필수, 휴지는 선택』이라는 말이 괜한 너스레가 아니다.
유학생 재호와의 불장난에 빠져 임신했지만 철저히 버림 받는 충청도 시골 처녀 순애의 기구한 인생 역정, 「비내리는 고모령」. 설상가상으로 순애에게는 낯선 시집 식구의 구박이 얽혀 든다. 김성녀(순애) 최주봉(재호) 윤문식 박인환 등 극단 가교 식구의 절묘한 호흡에 김정숙 작·연출. 15~2월 6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화~금 오후 4시 7시30분, 토·일 오후 3시 6시30분(월 쉼). (02)369_2913
월남전에서 돌아 온 총각 박만재. 마음에도 없는 부잣집딸 금자와 결혼, 재산만을 뺏고 옛애인과 함께 서울로 도망갔다. 그러나 사기도박판에서 몽땅 털려 탄광촌까지 쫓겨 간 그에게는 폭발 사고의 누명이 씌워져, 사형선고가 내려진다. 순덕 역으로 출연, 자신의 본령인 노래와 함께 마임 연기도 펼칠 가수 심수봉의 연기가 볼거리다. 「아들과 딸」의 작가 박진숙 작, 문석봉 연출, 이덕화(만재) 오정해(금자) 등 출연. 촐랑대는 변사역에 연극 배우 최종원. 27~2월 6일 세종문화회관대강당. 월~토 오후 4시 7시, 일·설연휴 오후 2시 6시. (02)368_1515
30년대 태어나 40년대 전성을 구가했던 악극(樂劇)이란 극히 평면적인 리얼리즘 극작술, 변사로 대표되는 신파조 연기술, 노골적인 복고풍의 가요 등 세 요소의 결합이다. 「그 때 그 쑈를 아십니까」 등 버라이어티 형식의 공연물 뿐 아니라, 「춘향전」 등 최근 여성 국극의 부활은 악극붐의 여파로 해석된다.
이번 「비내리는 고모령」은 93년 「번지 없는 주막」을 기점으로, 추억 속의 악극을 처음으로 부활시켰던 SBS와 극단 가교의 7년 동반 작업의 결과. 극단 모시는 사람들의 대표로 있다 이번에 연출을 제의받은 김정숙씨는 『완숙한 배우들과 벌였던 이번 작업은 20년 연극 생활 중 가장 행복한 때』라며 『앞으로 뮤지컬 작업에서 큰 영감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악극은 성인층의 집단무의식을 겨냥한다. 극에 빠져든 성인 관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추억의 노래들을 따라 부르며 눈물까지 비친다. 실제로 극단측은 『악극을 보고 실컷 운 뒤, 정화돼 나가길 바란다』고 부탁하고 있다. 「이수일과 심순애」 공연 당시 출입구에는 눈물닦개용 손수건까지 쌓아둬, 호응을 받기도 했다.
시간별로 관객층이 대별되는 독특한 수용 방식도 악극의 주요 현상. 낮 공연 때는 주부와 노년층이 위주였다, 밤 공연 때는 퇴근 회사원 등으로 바뀌던 양상이 이번에는 어떻게 변할 지 또한 관심이다.
장병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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