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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세기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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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세기가 열린다

입력
2000.0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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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벽 무의미한 시대 올것최근 헌법재판소가 현역군필 남성에 대한 공무원시험 가산제를 남녀평등 원칙에 어긋난다고 하여 위헌으로 판결하자 징병제 폐지론까지 들먹이는 엄청난 파문이 일고 있다. 그러자 정부와 여당은 헌재의 위헌 결정에도 불구하고 군필자에 대한 가산제를 존속하되 여성들에게는 사회봉사 가산점을 부여하겠다는 어설픈 평등정책을 내놓았다.

가부장적 의식을 뿌리뽑기 위한 호주제 폐지 등 아직 넘어야 할 산들이 많지만 1999년 우리 여성계는 남녀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의 제정과 직장내 성희롱 예방교육 의무화 등 괄목할만한 여권신장을 이룩했다. 21세기가 명실공히 「여성의 세기」임을 알리는 전주곡으로 손색이 없는 업적들이다.

부엌의 찬장마다 바퀴벌레에게 점령당해 골머리를 썩이고 있는 가정에는 그리 달갑지 않은 사실이지만 그들의 엄청난 성공 뒤엔 어미들의 자식에 대한 지극정성이 숨어 있다. 어미바퀴벌레는 대부분의 곤충들과는 달리 알들을 알집에 넣어 꽁지에 매달고 다닌다. 큰 아이 등에 업고 작은 아이 손에 안고 일다니는 격이다.

하지만 우리 인간을 비롯한 이른바 젖먹이동물의 어미들은 그보다 한술 더 뜬다. 아예 알을 몸 속에 품고 키운다. 어린 자식을 보호한다는 면으로는 더할 수 없이 기가막힌 방법이지만 한편으로는 수컷을 양육의 의무로부터 해방시켜준 사건이었다. 새들은 알이 수정되기가 무섭게 몸밖으로 내놓는다. 둥지에 덩그러니 놓인 알들을 내려다보며 부인은 남편에게 『당신이라고 알을 품지 못하라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묻는다. 그래서 절대다수의 새들은 모두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며 부부가 동등하게 힘을 합하여 자식을 기른다.

이제 머지않아 거리에서 무거운 배를 안고 가쁜 숨을 몰아쉬는 임산부를 보기 어려운 시대가 올 것이다. 시험관 아기는 말할 것도 없고 인공 자궁에서 아이를 키우게 될 날이 멀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난자와 정자만 병원에 제공한 후 이따금씩 들러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기를 들여다보다 9개월쯤 되는 어느날 집으로 데려오면 된다.

이쯤 되면 인간의 부부관계도 새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갈매기 부부의 하루 일과를 관찰해보면 둥지에 앉아 있는 시간과 먹이를 구하기 위해 나가 있는 시간이 거의 정확하게 나뉘어 있다. 실제로 갈매기 부부가 업무교대를 할 때 유난히 시끄럽게 떠드는 이유는 서로를 밖으로 내몰기 위함이다. 서로 집에 더 오래 있으려 다투다보면 불화의 골이 깊어지고 때론 이혼도 한다.

이제 산업의 종류와 구조가 변하고 여성들도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시기가 오면 꼭 남편이 「바깥양반」이고 부인이 「집사람」이어야 할 까닭이 없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여성도 과연 병역의 의무를 져야 하는가 등등 평등의 개념과 범주에 관한 논란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남성과 똑같아지는 것만이 평등을 이루는 길은 아니겠지만 한동안은 그런 방향으로 움직여갈 것 같다. /최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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