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 불멸의 신화윤열수 지음
대원사 발행, 2만 2,000원
조선왕조실록 세종 14년 5월의 기사. 「임금이 대언(代言)들에게 이르기를, 『용이 어느 곳에 보이는가? 태종 때에 용이 밭 가운데서 솟아나온 일이 있었다지만, 용도 금수(禽獸)의 일종이니 괴이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하니, 대언(代言)들이 대답하길, 『신 등이 아는 바로는 충청도의 평택·아산, 전라도의 만경·임피·용담 등지에 간혹 보인다고 합니다. 만약 널리 물어보신다면 본 사람이 반드시 많을 것입니다』하였다」
지금은 만화영화에서 찾는 것이 빠르지만 조선 때까지만 해도 용을 실재한다고 믿는 사람이 많았다. 그만큼 친숙한 영물(靈物)이었다. 띠를 나타내는 12마리 동물 가운데 유일하게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이 용이다. 하지만 별로 이상스럽게 여기지 않는다. 개나 소처럼 우리 생활에 함께 있기 때문이다.
책을 쓴 가천박물관 윤열수 학예실장은 『호랑이가 서민을 대변하는 기층문화였다면 용은 반대로 왕이나 황제같이 위엄있는 그 무엇을 떠오르게 하는 의치를 차지한 상징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용이란 대체 어떤 동물인지, 그리고 한국인에게 용은 과연 무엇인지 묻고 있다. 한국인 곁에 살아 숨쉬는 용의 모습을 요조조모 뜯어본 책이다.
용은 여러 종이다. 첫째로 꼽는 것이 응룡(應龍). 천 년이 지난 용으로 날개가 있고 발이 넷이며 비늘이 있으며 중국 고대신화에 자주 등장한다. 그 다음은 촉룡(燭龍). 이 용이 눈을 감으면 밤이 되고 눈을 뜨면 낮이 된다 하며 숨을 내쉬면 겨울이 되고 들이마시면 여름이 온다. 길이는 천 리, 머리는 사람 얼굴, 몸을 뱀과 같으며 붉은 색이다. 이 밖에도 저파룡(猪婆龍), 교룡(蛟龍), 사룡(蛇龍), 또 색깔로 나누는 황·청·적·백·현(흑)룡 등 십여 가지가 있다. 윗 몸은 사람이고 아래는 물고기인 용어(龍魚)도 있다.
용은 왕권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또 불교문화와 가깝다. 얼굴은 인간, 몸은 큰 뱀의 모습을 한 인도의 물과 비의 정령 나가에서 용의 원형을 찾는 것도 불교와 무관하지 않다. 절의 건축물에 용 형상이 곧잘 들어가고, 용자가 들어간 사찰이 숱하게 많다. 용은 위엄의 상징이고 법통을 수호하는 의미를 갖는다. 용에 관해 가장 빈번하게 언급한 문헌인 삼국유사에서 용은 개국 설화와 연관이 있다. 왕권의 상징인 동시에 왕이 죽어 용으로 다시 태어나 나라를 지켜줄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깔고 있다. 고려와 조선시대까지 이러한 개념은 이어졌으며 조선 말기에 이르러 이런 상징성이 약해지고 서민들의 기원 대상으로 바뀌었다.
「미술작품으로 해석한 용의 신화」에서 지은이는 머릿 속에만 그려오던 용을 표현한 여러 작품을 모아서 소개한다. 회화, 조각, 공예, 도자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랑받은 용은 그러나 어느 것 하나 똑같은 것이 없으며 쓰임새도 각각 달랐다. 전국 각지에 흩어진 민간 신앙 속의 용, 민속 놀이에 들어간 용, 용자가 들어가는 지명에 얽힌 유래와 용 전설, 심청전·구운몽·토생전 등에 나오는 용궁 이야기, 용꿈과 속담, 기우제에서의 용 등에 대한 자료를 망라했다. 지은이는 『수상생물이 풍어에 대한 은유로 쓰이는 한국의 용 신앙과 민속놀이는 중국과 일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한민족 특유의 사상』이라고 지적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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