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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의 산실] (1)

입력
2000.0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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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기에도 그랬듯, 앞으로도 꽤 오래도록 사회적 담론들을 분만하는 주된 산실은 일간신문과 방송일 것이다. 신문이나 방송은 한 사회의 의제를 설정하고 견해들을 취합해서 여론을 형성한다. 그러나 신문과 방송 같은 거대 미디어들이 반영하고 생산하는 것은 그 사회의 주류 담론들, 지배적 담론들이다. 물론 거기에 이따금씩 아웃사이더들의 목소리가 끼여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들은 대체로 구색을 위한 맛보기일 뿐이다. 요컨대, 신문과 방송에서 수용하고 확산하는 담론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용어를 빌면, 지배적 사상들이다.그 두 철학자가 「독일 이데올로기」라는 책에서 깔끔하게 정리한 정식에 따르면, 『어느 시대에든 지배계급의 사상들이 또한 지배적 사상들이다. 다시 말해서, 어떤 계급이 사회의 지배적인 물질적 세력이라면 그 계급은 동시에 그 사회의 지배적인 정신적 세력이기도 하다. 물질적 생산의 수단을 손아귀에 넣고 있는 계급은 동시에 지적 생산의 수단도 손아귀에 넣고 있다. 그런 만큼, 지적 생산 수단을 박탈당한 사람들의 사상은 이 지배 계급에 종속된다. 지배적인 사상들은 지배적 물질 관계의 관념적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보기에, 이데올로기는 자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규정하는 물질적 현실의 반영일 뿐이다. 한 사회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는 그러므로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다. 더 나아가, 그것은 지배의 이데올로기다. 그것은 보편적 가치라는 너울을 쓰고 불평등과 소외를 정당화하는 세계관이다.

그러면 그런 불평등과 소외를 폭로하고 개선하려는 소수파의 담론은 어디서 나오는가? 그것은 주로 거대 자본에서 상대적으로 독립돼 있는 잡지 매체들을 통해 생산되고 유포된다. 예컨대 지난 세기 45년에 사르트르가 창간해 지금까지 나오고 있는 「현대」나 53년에 장준하가 창간해 70년에 폐간된 「사상계」 같은 잡지들은 그런 소수파의 목소리를 담는 그릇이었다. 1965/66년 겨울에 창간된 「창작과 비평」 같은 잡지도, 이제는 그 잡지의 목소리를 반드시 비주류의 목소리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 소수파의 담론을 만들어내는 산실이었다.

잡지들이 실어 나르는 그런 소수파 담론은, 비록 주류 담론을 전복시키지는 못할지라도, 적어도 주류 담론의 경직성을 약화하는 역할을 한다. 예컨대 「현대」가 창간된 뒤 프랑스에 노동자 정부나 지식인 정부나 제3세계주의 정부가 세워진 적은 한 번도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일이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 잡지는 노동자의 권익이나 지식인의 사회 참여나 반제국주의를 옹호하는 목소리를 냄으로써, 프랑스 지배 계급의 이념적 경화를 어느 정도 막아냈다. 마찬가지로 한국에 「창작과 비평」이 옹호하는 가치를 실현하는 정부는 지금까지 들어선 적이 없고 앞으로도 쉽게 들어서지 않겠지만, 이 잡지는 그 고난의 발걸음을 통해서 한국 사회의 야만을 일깨우고 그것을 어느 정도 부드럽게 만드는 데 이바지했다.

1998년에 창간된 「월간 인물과 사상」은 그 전부터 나오던 무크 「인물과 사상」과 더불어 한국 사회의 집단주의, 차별주의에 저항하고 거대 언론의 횡포에 맞서 싸워 왔다. 그 잡지가 꿈꾸는 이상적인 사회로 한국 사회가 탈바꿈하지는 않을지라도, 이 잡지가 내는 목소리는 주류 사회로 하여금 그런 집단주의와 여러 수준의 차별에 대해서 반성하게 만든다. 마찬가지로 격월간지 「녹색평론」이나 계간지 「이프」같은 잡지들은 지배적 담론들이 챙기지 못한 생태 문제나 여성 문제를 물고 늘어짐으로써, 일상의 무감각에 구멍을 낸다.

이 달 말에 창간될 격월간지 「아웃사이더」는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한국 사회의 극우 집단주의와 싸우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한다. 소수파 매체가 거대 언론과의 싸움에서 쉽게 이길 수야 없겠지만, 그 잡지의 목소리가 적어도 주류 사회에 어떤 성찰의 계기를 제공해서 주류 언론의 이념적 지향이나 도덕적 수준을 변화시킬 수는 있을 것이다. 잡지로 대표되는 이런 소수 언론은 인문주의 정신의 마지막 거처가 되기도 할 것이다.

잡지 말고도 소수 담론을 옹호하는 매체로서 인터넷 신문들이 있다. 이미 상업 광고까지 수주할 만큼 세력을 얻은 「딴지일보」나 최근에 창간 준비호를 내기 시작한 인터넷 일간지 「OhmyNews」 같은 매체들은 사이버 공간을 진지로 삼아 주류 언론에 대항한다.

한국일보는 물론 주류 담론의 산실이다. 그러나 한국일보는 또한 비주류 담론의 생산자들에게도 관심이 있다. 불평등과 소외의 공간을 좁히기 위한 비주류 담론들의 노력은 주류 담론에 자기 성찰의 기회를 제공해, 사회를 좀더 살만한 곳으로 만드는 데 이바지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국일보는 이런 소수 담론의 산실들을 하나씩 엿볼 계획이다. 엿볼 매체들의 비주류성은 넓은 폭을 지닐 것이다. 주류 언론과 거의 비슷한 목소리를 내는 매체도 있을 것이고, 근본적인 대안 사회를 구상하는 매체도 있을 것이다. 먼저 현재 출간되고 있는 학술·문예·시사·비평 잡지들과 인터넷 신문들을 매주 화요일자에 살펴본다.

고종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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