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멕시코시에서 만난 택시기사를 잊을 수 없다. 그는 미터기를 작동시키지 않았다. 대신 퉁명스러운 말투로 목적지를 묻고는 값을 불렀다.자신이 체감하는 물가상승 폭을 감안한 「적정 가격」이라는 눈치였다. 그러다 백미러로 힐긋 뒷좌석을 훔쳐보더니 빙긋 웃으면서 그 날 환시세를 말해주고 계산기를 꺼내 달러화로 값을 고쳐 불렀다. 몇 푼 할인까지 해주면서 말이다.
그 택시기사는 환란 속에서 「경험」으로 경제의 이치를 배운 것이었다. 남보다 한발 먼저 머리를 굴리면 국가적 위기를 개인적 기회로 전환시키고 환차익을 거둘 수 있다는 지혜를 터득한 것이었다.
그 기사가 그 달러를 어디에 썼는 지는 모른다. 그러나 언제 문을 닫을 지 모를 은행에는 예금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다른 수많은 멕시코 사람들처럼 달러화를 장롱 속에 숨겨놓고 페소화 폭락 속에서 살아남아 보려고 애를 썼을 것이다.
그러나 개개인 차원에서 이성적인 행동은 국가 전체를 파멸로 내몰았다. 국민 모두가 너나할 것 없이 달러화를 긁어모으자 페소화 가치는 더욱더 떨어졌고 사재기 바람까지 불었다. 멕시코 사람들은 혼자 살려다 다같이 10년 넘게 환란의 긴 터널 속에 갇히고 마는 우를 범한 것이었다.
한편 작년 하반기에는 위기가 우리를 스쳐갔다. 대우가 파산상태로 내몰리면서 「11월 대란설」이 불거졌다. 채권자가 대거 환매에 나서면서 투신사가 자금난에 몰리고 증권사 및 은행이 흔들릴 위기가 우리 앞에 닥쳐온 것이었다.
다행히 대란설은 설로 끝났다. 환매가 없었고 인출소동 역시 없었다. 주식시장을 탈출한 일부 자금은 그나마 은행으로 몰렸고 원화는 안정세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대란설이 근거없는 악성 루머였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난 해 하반기는 천문학적인 부실 대우채권을 아무런 탈없이 소화할 수 있다는 정부발표가 경제를 안다는 「전문가」에게 꿈같은 설로 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한국호는 대량 환매라는 암초 가까이 몇 번 다가갔다가 마지막 순간에 키를 틀곤 하였다.
위기가 한국을 비켜간 것은 무엇보다 그 문턱에서 시기를 놓치지 않고 강력한 대책을 내놓은 정부 덕분이었다. 게다가 외국인이 자금회수에 나서고 주식시장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갈 때 끝까지 은행통장과 주식계좌를 손에 움켜쥐고 있었던 국민 역시 일등공신이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는 그러한 국민을 경제에 무지하고 투자위험에 무감각한 무모한 투자자로 본다.
모르는 소리이다. 국민은 경제에 무지하고 위험부담에 무감각해서 인출소동을 벌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물며 정부를 무조건 믿기 때문에 계좌를 끝까지 손에 움켜쥐었던 것은 더더욱 아니다. 주식시장이 넉달 가까이 심하게 출렁거렸던 것에서 나타나듯 한국인은 위기를 느끼고 있었고 저마다 살려고 머리를 열심히 굴렸다.
그러나 개개인 차원에서 위기시에 가장 「이성적」인 처신술인 달러 사재기를 대안으로 고려하지는 않았다. 국가를 파탄지경으로까지 내몰면서 혼자만 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난 하반기에 우리 국민이 보인 「무모함」은 국가를 파탄지경으로까지 몰고 가면서 혼자 살고 싶지는 않은 공동체의식의 결과였지 「무지」 및 「무감각」의 결과는 아니었다. 해외 탈출을 대안에서 빼고나면 남는 것은 「무모」하게 계좌를 끝까지 손에 움켜쥐는 것밖에 없다.
새 해이다. 경진년은 여전히 위기의 한 해일 것이다. 하지만 새 달력을 벽에 걸면서 가슴속에 치솟는 것은 자신감이지 두려움은 아니다. 우리는 이미 1999년에 2000년의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국가를 걱정하는 국민이 있는 한 우리는 수많은 어려움을 헤치고 재기에 성공할 것이다.
/김병국·고려대 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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