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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철 관전노트] 이창호의 루이 '악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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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철 관전노트] 이창호의 루이 '악연'

입력
2000.0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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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벽두에 전해진 루이나이웨이의 이창호 격파 소식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국내 바둑계는 각자 처한 입장에 따라 경악, 환호, 질투, 분노, 우려 등 매우 복합적인 반응을 나타냈다.루이가 작년 4월부터 본격 활동을 시작한 이후 1년도 못되어 국내 여성 바둑계를 석권한 것은 당연하다 하더라도 승률 84.6%의 높은 기록으로 승률부문 1위를 차지할지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세계 바둑 사상 여성 기사가 기록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더구나 세계 최강 이창호마저 무너 뜨리고 국수전 도전권을 거머쥔 것은 실로 바둑계 전대미문의 대사건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이창호와 루이의 인연은 별로 좋지 않다. 두 사람은 92년 제2회 잉씨배 1회전에서 처음 만나 이창호가 맥없이 무릎을 꿇었다. 당시 이창호는 한국 바둑계 전관왕을 꿈꾸며 초고속 성장을 하던 무렵이었는데 일반적으로 남자들에 비해 한 수 아래로 분류되던 여성기사에게 졌다는 사실이 어린 마음에 엄청난 충격이자 치욕으로까지 느껴졌을 것이다. 이창호는 지금도 가장 잊을 수 없는 바둑으로 당시 루이와의 대국을 꼽으며 『한동안 바둑 둘 맛을 잃었었다』고 말한다. 이창호가 워낙 점잖은 사람이니까 그렇게 말했지 조치훈 식의 표현을 빌자면 『정말 그 자리에서 죽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근 10년 만에 다시 벌어진 루이와의 대결에서 이창호가 또 패했다. 이번에도 누구나 이창호의 완승을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뜻밖의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물론 이창호가 신이 아닌 바에야 승부란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는 것이지만 상대가 다름아닌 루이라는 사실 때문에 이창호가 느끼는 충격은 생각보다 대단했을 것이다. 작년말 춘란배에서 마샤오춘9단에게 패배한 것까지 겹쳐 혹시나 이창호가 슬럼프에 빠지지는 않을까 우려되기도 한다. 이창호는 루이와의 대국이 있은 다음날 홀로 어디론가 낚시를 떠났다.

한편 루이의 이번 승리는 국내 바둑계에 신선한 자극이 될 것같다. 그동안 국내 바둑계는 이창호, 조훈현의 위세에 눌려 중견이고 신예고 가릴 것없이 온통 주눅이 들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물정 모르는」 루이가 혜성처럼 등장해 화끈한 싸움 바둑으로 반상을 휘젓는 모습은 국내 프로들에게 강한 자극제가 되었을 것이다. 루이는 생활태도 면에서도 귀감이 되고 있다. 장주주-루이 부부가 한국기원에서 가장 먼저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하는 공부벌레라는 사실은 이미 모르는 사람이 없다. 루이는 한국에서 바둑을 마음껏 둘 수 있게 되어서 『너무 행복하다』고 말하곤 한다. 하루 종일 바둑만 생각하고 바둑만 연구하는 생활자세 속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한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이상할 것이다. 루이, 파이팅! /바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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