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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소설의 한순간](39) 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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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소설의 한순간](39) 은희경

입력
2000.0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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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 장편소설 「그것은 꿈이었을까」나는 신도시에 산다. 이따금 나는 한밤중에 차를 몰고 나와서 밤고양이처럼 거리를 느릿느릿 돌아다닌다. 가로등이 늘어선 포장도로와 아파트 단지, 공원, 대형 쇼핑몰의 불빛들. 그것들을 하나하나 지나쳐 가다 보면 이상하게 슬퍼진다. 한적한 일주도로로 들어서면 또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텅 빈 주유소 간판에 불이 환히 들어와 있고, 피자집 창을 통해 드문드문 마주앉아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 옆의 소방서에서 소방차는 언제나 잠들어 있다. 모든 것이 갖춰지고 평화로워 보인다. 그러나 그런 것이 과연 삶의 전부일까.

어느 취한 밤 나는 택시를 타고 혼자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차가 달리기 시작하자 정신이 들면서 어쩐지 좀 외로웠다. 『이렇게 취했고 게다가 외롭기까지 한데도 그리운 얼굴 하나 떠오르지 않는구나』 내가 아주 늙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고 가슴이 허전했다. 문득 창 밖을 보니 안개가 자욱했다. 신도시는 온통 안개 천지였다. 어둠 속에 묵묵히 서 있는 모든 고층 건물이 일제히 안개를 내뿜고 있는 것 같았다. 카프카의 「성」이 떠올랐다. 주인공 케이는 끝내 성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이 도시에 살고 있는 나 역시 나의 진정한 삶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언저리만 배회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나는 그 밤들을 소설로 만들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 소설 속으로 안개를 옮겨올 수 있을 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안개 피우는」 일이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그런 생각을 하면서 비틀스의 「러버 소울」을 걸어놓고 혼자 캔맥주를 마시곤 했다. 그러므로 이 소설의 몽환적인 분위기는 존 레논의 목소리와 맥주의 취기에게서 차용한 것이다. 「러버 소울」에 있는 14개의 곡들이 소설의 소제목이 되었고, 술에서 깨어나 맨 처음 내뱉기 십상인 말 「그것은 꿈이었을까」(현대문학사 발행)가 소설 제목이 되었다.

독자들은 이 소설을 낯설어했다. 통신 연재소설이었는데, 독자들이 참여하는 「작가와 함께」란에 그런 의견이 자주 올라왔다. 나는 이렇게 눙칠 수밖에 없었다. 『당연하죠. 누군가 대신 써주니까요. 그 사람이 자꾸만 원래 제가 쓰던 식으로 쓰려고 해서 감시를 게을리 할 수가 없답니다』라고. 내가 첫 신문연재를 시작할 때 한 선생님은 『남 앞에서 옷 갈아입는 일』이라며 반대했다. 사실 연재란 보여서는 안될 과정까지를 그대로 노출하는 면이 있다.

나는 이 소설에서 불안하고 고독한 인간이라는 존재를 일상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었다. 안개 뒤에 감춰놓은 그 사랑을 알아주지 않을까봐 조바심이 났을 뿐이었다./소설가·작품집 「타인에게 말 걸기」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장편 「새의 선물」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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