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족이야기… 시민운동가 김용숙씨새 천년을 불과 몇 시간 앞둔 지난해 마지막날 저녁, 내 몸에는 감기기운이 엄습하고 있었다. 콜록콜록 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손님이 찾아왔다.
중국에서 막 귀국한 그 분은 내 손에 편지 두 통을 돌려주고는 급하게 떠나려했다. 『왜 그렇게 서두르세요, 콜록. 따뜻한 차라도 한 잔 하시고….』 『아닙니다. 3개월만에 한국에 온 건데 저도 빨리 가족한테 가야죠. 새천년 첫 새벽만큼은 가족과 같이 보내려고 기를 쓰고 온겁니다.』
특별한 날을 가족과 함께 보내기 위해 먼길을 날아오는 사람도 있는데 내 남편은 역시 멋없다. 그는 중국에 그냥 남았고 대신 동업자 편으로 달랑 편지 두통을 보낸 것이다. 한 통에는 아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다른 한 통에는 「김용숙 앞」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들과 나는 각자 뜯어서 읽기 시작했다.
『김용숙, 나 없는 동안 시민단체(아줌마는 나라의 기둥) 하나 만들어서 성공시킨 것 축하한다. 다른 말은 할 것 없고, 딱 두가지만 부탁하겠다. 하나는 잘난 척 하는 것 죽이고 늘 겸손을 잃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게만 하면 하는 시민단체 일은 잘 될 것이다.
둘째는 늘 겸손해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판단을 너무 의심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김용숙이란 여자도 이제 혼자 올바른 판단을 내릴만한 소양을 쌓았으니 옳다고 생각되면 밀고 나가라. 새천년 나의 두가지 부탁이다.』
그것은 남편이 중국에서 보낸 신년 메시지였다. 남편은 새로 시작한 사업 때문에 지난 가을 중국으로 건너간 후 지금까지 머물고 있다. 중국은 전화사정이 좋지 못하다. 그러다보니 나는 아예 전화를 걸 수가 없고, 가끔 핸드폰으로 걸려오는 남편의 전화는 늘 잡음속에서 서로 소리만 치다가 끊기곤 했다.
그 와중에도 나는 내 자랑만 실컷 늘어놓곤 했다. 『여보, 오늘은 어느 신문에 내 얼굴이 실렸어. 내일은 어느 방송국에서 나를 오라더라. 어제는 길거리를 걸어가는데 누가 내 얼굴을 알아보더라. 여보, 나 확실히 출세했지?』
아무래도 그냥 놔두었다간 큰 일 나겠다 싶었는지. 남편은 생전 처음 내게 편지를 쓸 생각을 한 것이다. 사실 내 남편은 아무리 벗겨도 속을 드러내지 않는 양파 같은 사람, 크렘린이다. 부부싸움을 해도 나 혼자 난리법석을 떨다 끝나고, 무슨 의논을 해도 말은 내가 다 하는데 결론은 그 사람이 옳다.
내가 세 번을 소리쳐 부르면 마지못해 한번 말하고 옆에서 그릇을 때려 부수고 전화기를 박살내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나는 밖에서 일어난 일을 남편에게 미주알 고주알 죄다 말한다. 그 와중에 이 사람 저 사람 흉을 보고 바가지로 욕을 퍼붓는다. 은근히 남편도 나와 같이 흥분하고 그 욕을 받아주길 바라는데 그러는 법이 없다. 그에겐 무슨 말을 해도 거기가 종착역이다.
나는 남편이 남을 평가하는 것을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누구 흉을 보는 것은 더더욱 안 한다. 그런 점에서 흉쟁이 아내를 타이를만도 한데 그는 내가 흉보는 것조차도 평가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 혼자 마구 입을 놀리다보면 어느새 부끄러워지고 만다.
신혼 초에는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지 끊임없는 질문을 하고 대답을 들으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남편이 나를 좋아하든 안 하든 개의치 않고 산다. 어차피 나는 싫은 사람하고는 하루도 못 사는 체질이고 내가 좋으면 그만이니까. 그래서 오늘도 크렘린 같은 남편한테 코가 꿰어서 열심히 짝사랑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들에게 온 편지는 이렇다.
『설날에 당연히 집에 가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아빠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이곳에 남기로 했다. 너에게도 시간을 아끼라는 말을 해주고 싶구나. 네가 어서 갈 길을 정하고 그쪽으로 매진하는 모습을 보고싶다.』
남편은 우리 아이가 아직도 대학교 문제로 갈팡질팡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다니는 학교를 계속 다닐 것인지, 아니면 다시 공부를 시작할 것인지. 나도 이 문제로 아이에게 몇마디 야단도 치고 달래도 보았지만 별 효력이 없던 차였다.
하지만 중국에서 날아온 편지는 아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 모양이다. 가족간의 대화에도 때때로 이런 간접화법이 필요한 것은 아닐런지. 늘 한 집에서 마주보며 살 때에는 미운 것만 보이고 답답한 것만 도드라져 보였는데 한발짝 떨어져서 조용히 얘기하면 이리도 잘 들리는 것을.
다른 가족들이 폭죽이 터지는 하늘 아래서, 혹은 요란한 TV소리를 들으며 새 천년을 맞는 동안, 나와 아들은 아랫목에 배를 깔고 나란히 누워서 우리집 가장이 보낸 신년사를 읽고 또 읽었다. 자정이 다 되어갈 즈음, 감기 기운이 몸살로 번져 가는지 으슬으슬 오한이 들기 시작했다.
아들은 벌떡 일어나 약을 사오겠다며 밖으로 나갔다. 그리하여 밀레니엄 첫 이슬이 내리던 날, 나는 안방에서 감기약을 기다리며 오들오들 떨고 있었고, 아들은 문을 닫지 않은 약국을 찾아 온동네를 뛰어다녔다.
남편은 먼 중국 땅에서 아마도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을 생각하며 소주 한 잔으로 잠을 청했을 것이다.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새해를 맞았던 그날,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한 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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