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도쿄(東京)에서 열린 미국과 일본의 규제완화·전기통신 협상에서 미국은 NTT의 통신 접속요금을 현재의 30% 정도로 끌어내리라고 주문했다.미국의 이같은 요구는 일본의 전자상거래 시장을 지배하려는 의도와 무관하지않다. 93년 131만대에서 99년 4,323만대로 늘어난 세계의 인터넷 호스트 가운데 미국이 70%를 차지한 반면 일본은 4%에 불과해 성장 잠재력이 크다.
또 눈에 보이지않는 다양한 무역장벽을 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자상거래는 미국의 궁극적인 일본 시장 공략 방안이기도 하다.
그같은 의도를 가진 미국에 최대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은 턱없이 비싼 일본의 통신료. 일본에서 일반 전화회선으로 한달동안 인터넷에 접속해둘 경우 19만1,000엔이 들지만 미국에서는 25달러(2,600엔)만 가지고도 한달내내 인터넷 전용회선에 접속할 수 있다. 이 격차를 해소하지않는 한 미국의 일본 시장 공략은 공염불이다.
하지만 통신요금을 낮추라는 미국의 압력은 일본 국내에서도 환영을 받았다. 「흑선(黑船)」이 메이지(明治) 유신을 불렀듯 『외압만이 가입자 회선을 사실상 독점해온 NTT의 체질을 바꿀 수 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의 주변에서조차 『이래 가지고서야 어떻게 인터넷시대를 맞겠느냐』고 맞장구를 칠 정도였다.
실제로 미일 협상을 전후해 일본의 통신업자들은 보다 싼 접속요금과 고속통신을 실현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에 휘말렸다. 지난달 「비대칭 디지털가입자회선(ADSL)」 시험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도쿄 메탈릭통신」의 도조 이와오(東條巖) 사장은 『NTT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고액의 종량제 요금이 적용되는 NTT 전화교환기를 거치는 대신 그 직전의 주배선반(MDF)에서 데이터 통신을 분리해 프로바이더와 이어주는 ADSL 서비스는 고속·저가 통신시대를 선도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통신속도는 NTT 종합정보통신망(ISDN)의 10~20배인 640킬로바이트(KB)~1.6메가바이트(MB)에 이르지만 월정 요금은 ISDN의 8,000엔과 같거나 싼 5,500~8,000엔이다.
프로바이더 요금을 포함한 것이어서 따로받는 ISDN과 비교가 되지않는다. NTT가 어쩔 수 없이 ADSL 시험 서비스를 시작했고 니혼텔레콤, KDD, DDI 등 통신업자들이 일제히 뒤따르고 있다.
전국 70여 군소업자가 참여한 CATV망도 NTT를 위협하고 있다. 대표적 사업자인 「타이터스 커뮤니케이션즈」는 광·동축 혼합케이블(HFC)을 이용, 512KB 속도의 통신서비스를 프로바이더 요금까지 포함, 월 6,000엔에 내놓았다. 통신속도는 ADSL과 맞먹지만 ISDN, ADSL과 달리 월 2,550~2,830엔의 기본요금을 받지않는다는 점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소프트뱅크와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 도쿄전력이 손잡은 「스피드넷」이 여름에 시작할 무선서비스도 주목거리다. 도쿄전력의 전력케이블을 간선망으로 삼고 전신주와 가정을 무선으로 연결, 1MB 속도의 서비스를 프로바이더 요금까지 합쳐 월 5,000엔에 제공할 계획이다.
한편 NTT계열의 NTT 새털라이트 커뮤니케이션즈는 통신위성(CS)을 이용, 1MB의 서비스를 월 3,980엔에 팔고 있다. 다운로드만이 가능해 데이터를 보낼때는 일반 전화회선을 이용, 프로바이더 요금을 따로 내야한다.
지난해 6월 도쿄에서 시작된 「광(光)공간통신」 실험도 새로운 통신망 구축의 가능성을 넓혔다. 수백㎙ 떨어진 빌딩의 옥상이나 창가에 설치된 송수신 장치를 정조준, 레이저빔을 쏘아 광케이블과 맞먹는 150MB의 초고속 통신에 성공했다.
초기 공사비가 광케이블의 10분의1에 불과하고 월이용료도 절반이면 된다. 무선통신과 달리 주파수나 출력에 대한 법적 제약이 없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폭우속에서도 통신이 가능하다는 실험 결과는 있지만 빛을 차단하는 비·눈·안개 등 자연현상의 완전한 극복이 과제로 남아 있다.
도쿄=황영식특파원
yshwang@hk.co.kr
■[정보화전략/일본] 전자상거래 본격 개막
일본에도 인터넷을 이용한 전자상거래(E-Commerce)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다. 그동안 중소 벤처기업의 독무대였던 전자상거래 시장에 지난해 말부터 다이에이, 세이유(西友) 등 대형 유통업체들이 뛰어들고 있다.
특히 최대 편의점업체인 「세븐 일레븐 재팬」이 6일 발표한 「세븐드림.com」 설립 계획은 일본의 전자상거래를 꽃피우는 기폭제가 되고 있다. NEC와 소니, 노무라(野村)종합연구소, 미쓰이(三井)물산, 일본교통공사(JTB) 등 분야별로 일본을 대표하는 7개사가 동참, 2월에 설립할 「세븐드림.com」은 전국 8,000여 세븐 일레븐 점포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업체를 압도한다.
가정의 인터넷 단말기와 편의점의 전용단말기를 이용해 JTB의 여행상품, 소니의 영상·음악·게임 소프트웨어 등의 상품을 할인가격으로 주문하고 상품인수와 대금결제도 모두 편의점에서 처리할 수 있다. 중고년층의 PC 기피증을 감안해 NEC와 소니가 인터넷 접속·조작이 간편한 시스템을 개발, 10월에 서비스를 시작하고 2003년에는 3000억엔의 매출을 이룬다는 목표다.
대기업의 참여는 틈새시장에 머물렀던 일본의 전자상거래 시장이 빠르게 팽창하고 있기때문이다. 통산성에 따르면 98년 650억엔 규모였던 전자상거래 시장은 지난해 1,900억 규모로 늘어났고 2002년 1조6,200억엔, 2003년 3조1,600억엔으로 커질 전망이다.
전자상거래 사이트의 상점도 97년말 7,500여개에서 지난해말 약 2만개로 늘어났으나 시장 팽창 속도가 상대적으로 빨라 사업가능성이 그만큼 크다는 것이 노무라종합연구소의 진단이다.
한편 대형 유통업체의 전자상거래 시장 참여는 여성의 인터넷 이용이 크게 늘어난 것이 직접적인 요인이다. 다이에이가 98년 4월 인터넷 회원조직 「d'club」을 출범한 직후 여성회원의 비율은 25%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에는 4만명의 회원중 42%를 여성이 차지했고 특히 11월 신규가입자의 62%가 여성이었다. 다이에이 영업총괄실 노자와 마사요시 네트기획팀장은 『슈퍼마켓의 주고객인 가정주부가 인터넷을 시작한 상황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소리가 조직 말단에서부터 밀려들었다』고 전자상거래 시장 참여 배경을 설명했다.
인터넷 경매도 본격화했다. 지난해 「온세일」 등이 속속 인터넷 경매 사이트를 개설했으며 11월말에는 「DeNA」가 운영하는 본격적 회원제 인터넷경매 사이트 「비더즈」가 열렸다.
또 야후 재팬의 경매사이트는 개인이나 법인을 가리지않고 누구나 출품할 수 있다는 점이 호감을 사 지난해 9월말 개시 이래 두달만에 8만점의 경매가 고시되는 대형사이트로 성장했다.
/도쿄=황영식특파원
■[정보화전략/일본] 시게토미 도시유키 SGS부사장
인터넷 상거래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점이 힘의 원천이다. 그러나 역으로 회원제로 운영되는 닫힌 네트워크여야 비로소 가능한 사업도 있다.
게임기메이커 세가의 자회사로 파칭코기계 판매와 업계 컨설팅 전문회사인 SGS가 20일 시작하는 「R7」서비스가 대표적인 예다. 지난해 세가가 발매, 세계적 인기를 모은 인터넷 게임기 「드림캐스트」를 변형한 「R7」을 정보단말기로 이용한다.
전국 7,766개 파칭코업체와 1만7,426개 점포, 관련 업계를 네트워크로 묶어 신제품과 중고품·경품을 거래하고 각종 정보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시게토미 도시유키(37) SGS부사장은 『회원의 구매력이 엄청난데다 대부분이 의사결정권자라는 점이 「R7」 사업의 출발점』이라고 설명했다.
월회비 5,000엔만으로도 흑자가 가능하고 연간 20조엔을 넘는 업계의 총매출액, 1조엔의 경품 구매액 등으로 보아 거래 수수료 수입도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그는 또 『R7은 드림캐스트와 마찬가지로 게임과 인터넷을 즐길 수 있다』며 『PC에 비해 조작이 간단하다는 점에서 중고년층이 대부분인 파칭코 업주에게는 최적의 단말기』라고 강조했다.
벌써 6,000여대의 예약을 받아놓았고 2월까지는 1만6,000~2만개, 궁극적으로는 6만대 정도가 팔려나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경비·운송·기계 디자인회사 등 관련 업체는 물론 경찰까지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편 이 회사는 파칭코업주의 대다수가 재일동포임을 감안해 한국의 ㈜파라다이스와 손잡고 「R7」망에 교통·호텔·카지노 등 관광 정보와 우량제품 정보를 소개, 한국 관광과 투자, 경품 구입 등도 촉진할 계획이다.
/도쿄=황영식특파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