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金鍾泌)총리가 74회 생일인 7일 출입기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가졌다. 김총리는 11일 국무회의에 이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주재하는 오찬을 끝으로 자민련으로 돌아간다. 공동정부의 한 축으로 총리직을 맡은 지 1년10개월여만이다.김총리는 이날 재임중 우여곡절이 많았던 정치문제에 대해서는 가벼운 미소로 비켜가면서도 『나라경제가 풍전등화에 몰린 위기상황에서 총리직을 맡아 국가경제의 반석을 세운 것에 큰 보람을 느낀다』고 회고했다.
JP는 재임중 「대독총리」 「임명총리」에게선 볼 수 없었던 실세총리의 「힘」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정치적으로는 2인자일 수밖에 없는 「벽」을 확인해야만 했다.
JP의 총리직 수행은 정치적으로는 첫날부터 바람잘 날이 없었다고 할 만큼 시련이 거듭됐다. 98년 2월25일 총리서리로 임명됐으나 「서리」딱지를 떼는 데만 167일이 걸렸다. 특히 지난해에는 공동정부를 견제하려는 야당의 공세가 여전한 가운데 국민회의와 내각제 개헌, 합당 등을 둘러싸고 물밑 신경전을 계속 했다.
지난해 7·8월은 최대의 시련기. 7월초 특검제 수용을 놓고 자신과 맞선 국민회의 김영배(金令培)총재대행을 겨냥, 『이제 (국민회의와)헤어질 때가 됐구먼』이라며 전면전에 나서 김대행을 낙마시키는 등 힘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내각제 연내개헌 유보와 합당론에 휩쓸리면서 「말바꾸는 정치인」 「대국민 약속 위반」 등의 비난에 직면하는 등 상처를 입었다. 개인적으로도 당시 자민련의원들에게 500만원씩 지급한 「오리발사건」과 「비자금사건」이 동시에 터져 발목을 잡혔다. 한 측근은 『김총리가 밤잠을 설친 고통스러운 때』라고 말했다.
내각제 유보와 합당론의 격랑속에 김총리는 분명한 입장표명을 유보하며 「대통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2인자철학을 지켰지만 4번이나 국회에서 국무총리해임건의안이 상정되는 등 곡절을 겪어야 했다.
정치적 어려움과 달리 행정적으로는 이미 70년대 4년6개월간 총리를 했던 「경험」과 「힘」을 바탕으로 실세총리의 역량을 한껏 과시했다는 평이다. 지난해초 정부가 재추진한 2차조직개편을 『내가 알아서 하겠다』며 무산시켰고 특검제를 전격수용하겠다고 밝힌 것 등이 그 실례. 총리실의 한 간부는 『행정에 관한한 모든 것을 꿰고 있어 거침이 없었다』고 평했다.
이동국기자 eas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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