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소중한 추억은 대부분 20세기에 만들어졌다. 귄터 그라스의 최근 저서 「나의 세기」는 1900년부터 1999년까지의 추억 100편을 모은 책이다. 작가는 20세기의 출발점을 1900년으로 잡은 듯한데, 또 「1901년」편에서는라고 적고 있다. 21세기의 시작에 대해서는 세계의 많은 사람과 책임있는 기관들이 모호한 태도를 보인다.
▦새 천년을 맞는 훤소(喧騷)에도 불구하고, 축하 분위기에 회의와 혼란이 섞여 있는 것은 이 때문인 것 같다. 로버트 캐플런과 딕 테러시는 분명한 입장을 밝히고 있는 미국 수학자들이다. 「시간은 아무것도 잊지 않았다」라는 글에서 그들은 21세기와 새 천년의 시작은 2001년이라는 주장을 지지한다. 수학적·역사적·문화적·정치적 관점에서 치러진 논쟁들을 보면 「00」보다는 「01」쪽이 우세하다는 것이다.
▦예수가 탄생한 해를 0년이 아닌 1년으로 잡고 있는 그레고리 달력에 따르는 한, 이는 피할 수 없는 결론이 된다. 1세기는 1년에 시작되어 100년에 마감되고, 2세기는 101년에 시작된 것이다. 엄정성과 철저함이 수학과 과학의 속성일 것이다. 화려한 불꽃으로 장식해가며 해넘이와 해맞이를 한 것은 대세처럼 돼 버린 세계적 분위기 탓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 고식성(姑息性)은 마땅히 경계해야 하지만, 지구적 분위기를 외면할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아직 20세기는 저녁 하늘을 물들이는 황혼처럼 남아 있다. 캐플런의 글 「시간은 아무것도…」는 타협적인 결론을 내리고 있다.
여기에 동의하고 싶다. 거창한 겉치레 행사는 지난 한 번으로 족하다. 조촐하고 정갈하지만 명징한 시간 개념을 갖고, 새 즈믄 해와 세기를 맞이하자는 것이다. 의미가 커서 두 차례나 새시대 맞이를 했다는 것이 20세기의 마지막 추억이 되게 하자. /박래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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