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여자에게 묻는다 『사랑했었느냐』고. 여자는 대답 대신 눈물이다. 질문은 어쩌면 남자 자신에게 던져진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진짜 사랑했던 것일까. 사랑했다면 헤어짐은 슬픔이고, 그렇지 않다면 지난 시간은 도로(徒勞)에 불과한데. 어느 경우도 비극일 뿐이다. 그러나 「주노명 베이커리」(감독 박헌수)에서 슬픔의 버전은 이 한 장면 뿐이다. 또 다시 불륜을 다룬 영화지만 「해피 엔드」의 정서와는 사뭇 다르다. 도덕적 잣대 보다는 행복이라는 명제에 충실했다.빵집을 운영하는 주노명(최민수)은 아내(황신혜)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아내의 한숨을 멎게 해주고 싶어 그 남자 박무석(여균동)의 아내 해숙(이미연)에게 부탁한다. 『당신의 남편이 빵집에 다시 들를 수 있게 해달라』고. 그러나 배려는 주노명에게도 새로운 일상을 만든다. 해숙에게 빠져 버린 것이다. 「주노명 베이커리」는 빵집 부부와 소설가 부부의 교차 사랑(스와핑)을 그렸다. 그러나 성적 만족을 위한 스와핑의 느낌보다는 「로맨스 혹은 사랑」 정도가 적당하겠다.
물론 말도 안된다. 어떤 남자가 아내의 한숨을 잠재우기 위해 딴 남자를 애인으로 용인할까. 그러나 「주노명 베이커리」에서는 그것이 가능하다. 우선 소설가 박무석은 주노명보다 못생겼고, 몸도 별 볼 일 없다. 저보다 열등한 동물에 대해선 적개심이 적은 것이 수컷의 본능인지라 주노명 역시 「아내를 통채로 배앗길 염려는 없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주노명에게 고민이 생긴다. 『그 별 볼 일 없는 놈을 왜 좋아하지』
버터와 설탕이 적당히 버무려져야 말랑말랑한 빵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영화는 현실과 유머를 잘 버무려 놓았다. 「오라 빵이여. 악마를 물리치는 마늘 빵이여. 내 영혼을 소보루시켜다오」 같은 박무석의 소설 대사, 「나는 이제 한숨의 의미를 알았다. 사람의 마음이 사막으로 변하면 모래바람이 한숨으로 나온다」같은 주노명의 독백처럼 유머와 현실을 오가는 재미를 골고루 갖추었다. 줌과 달리(레일을 따라 촬영하는 기법)를 이용한 카메라의 심리 표현, 빵이 익어가는 과정과 섹스신을 교차편집한 것도 상투적이지만 감각적이다.
틈만 나면 목에 힘이 들어가는 최민수 역시 코믹 연기를 위해 오랜만에 힘을 뺐다. 한계는 곳곳에서 드러났으나 이미연, 여균동의 연기가 이를 커버했다. 그러나 슈크림 같은 불륜에서 바게트 같은 일상으로 돌아오는 계기의 매개로서 이 영화 역시 「추억」을 이용했다. 슬픔과 기쁨의 순간을 같이 했던 지난 시절을 반추하며 「그래도 가족이 최고」라는 식으로 서둘러 봉합하는 뻔한 스토리를 구사함으로써 매력을 잃었다. 30대의 불륜을 코믹하게 다룬 이야기에 흥행의 최대 변수인 20대 여성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15일 개봉. 오락성 ★★★☆ 작품성★★★ (★5개 만점, ☆은 1/2 한국일보 문화부평가)
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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