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흐르면 반드시 드러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모월 모일 지구의 종말을 주장하는 사이비 종교 집단 같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2000년 1월 1일의 해는 밝게 떴고, 사람들은 여전히 분주하게 움직였으며, 1월도 벌써 여러 날이 지났다. 인류역사의 마지막 페이지를 1999년으로 마감해줄 각 종교의 「구원자」는 결국 나타나지 않았다. 역시 사이비였나 보다.아무런 거리낌없이 흐르는 시간을 토막내 숫자를 달아주는 것이 너무 인위적이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런 숫자들이 쌓이고 쌓여 천이란 숫자를 두 번이나 채웠을때, 어느 누구나 묘한 흥분과 기대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 흥분과 기대감을 우리들은 희망이라 부르나보다. 지금 우리에겐 바로 이「희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올해 2월 고교졸업을 앞둔 예비대학생(혹은 예비재수생)이다. 이제 곧 성인 대접을 받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진다고 생각하니 뭐랄까, 삶이란게 하나의 건물이라면 벌써 옥상에까지 올라온 느낌이다. 기대되고, 약간은 겁도 나고, 그렇지만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까지…. 무엇이든 시작할 때 마음은 다 그런 것 같다. 이런 마음을 초심이라고 한다지.
이 새로운 마음으로 무엇을 할까. 1월도 다가고 신문 한 구석의 「2000」이란 활자가 익숙해지기 전에 자신의 목표와 상황에 맞는 계획을 세워보는 건 어떨까. 사실 계획을 세우기에 지금처럼 좋은 시기도 없는 것 같다.
계획하면 언제나 나오는 말, 「작심삼일」. 그러나 계획이라도 없었다면 사흘이라도 충실히 보낼 수 있었을까. 계획한 바를 사흘이라도 지킨다면 그 사흘은 1년 중 가장 소중한 사흘, 나를 가장 많이 성숙시키는 사흘일 수 있다.
아침마다 동네를 한 바퀴 돌겠다며 운동복을 한 벌 장만한 옆집 아저씨, 『새벽인데도 동네에 사람이 왜 이리 많냐』며 이틀만에 그만두었다. 새로 산 강아지를 스스로 목욕시키겠다며 「1주일에 1번 배꼽이(강아지 배꼽이 유난히 컸다고 한다) 목욕시키기」라는 계획을 세웠던 한 선배. 그 뒤 배꼽이는 처음 3주간은 깨끗이 목욕했지만, 그 뒤 약 석달간 전혀 씻질 못했다. 그래도 그나마 계획이 없었다면, 옆집 아저씨는 동네 두 바퀴나마 뛸 수 있었을까. 강아지 배꼽이는 과연 3주간이나마 제대로 목욕할 수 있었을까. 「보나마나 작심삼일」이라며, 사흘을 포기하는 것보다는 단 사흘이라도 열심히 할 수 있게 해 주는 처음의 마음가짐을 갖는 자세가 새천년을 맞은 우리에겐 필요하다.
서울 경복여고 3 ·조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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