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는 주부처럼 매일 프로그램이라는 밥상을 차린다. 음식의 맛과 영양, 그리고 빛깔, 또 담길 그릇에서 분위기까지 PD는 늘 고민한다. 그 밥상이 천년에 한 번 차리는 특별한 거라면 고민의 크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매년 새해는 TV가 맞이했다. 그 일상적인 송구영신을 뛰어 넘을 컨셉과 아이디어가 10 메가바이트 정도 필요했다.그 천년의 밥상 차리기는 지난 해 3월부터 시작됐다. 12월이 되자 우리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매우 경쟁적인」 상황에 서 있게 됐다. 내 잠꼬대는 그때부터 심해졌다. 아내가 확인해 준 잠꼬대의 내용은 심한 투덜거림과 약간의 욕설, 그리고 하면 된다 식의 반전도 포함된다.
그즈음 방송사들의 밀레니엄 특집 준비를 호들갑 떤다고 누군가 얘기했다. 그 호들갑을 제대로 떨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좀 장황하게 얘기하고 싶다. 일곱 곳의 위성을 1년 전부터 남보다 먼저 청약해야 했고, 9개월에 걸쳐 크고 작은 회의를 수십차례 하고 나서, 사전답사와 사전취재를 수십 팀이 다녀 왔다. 32시간 동안 생방송하기 위해 900여명의 제작진이 산꼭대기, 섬, 땅끝, 하늘, 강, 바다 위에서 땀흘렸다. 스탠바이의 긴장감과 현장의 추위 그리고 밤샘에 이르기까지 여기 다 쓰지 못할 정도다.
그렇게 해서 TV를 통해 흑산도의 장엄한 일몰과 에펠탑의 현란한 불꽃놀이가 안방으로 척척 배달됐다. 수천만 시청자가 천년이 바뀌는 현장을 보고 느끼는 것이다. PD도 일몰을 보면서 장엄한 서사시 같은 감동을 느꼈고, 광화문 자정행사의 웅장한 스케일이 자랑스러웠다. 그래서 TV는 기꺼이 호들갑을 떤다. 이번 생방송이 벌어진 부조정실은 총동원된 제작진으로 발디딜 틈 없이 붐볐고, 나는 그 아수라장에서 뭔지 모를 경건함을 느꼈다.
방송 일이란 게 머리와 몸을 모두 쓰는 아주 번잡스런 일이다. 그래서 밥상 차리는 주부의 일과 많이 닮았다. 다행히 천년 밥상 차리기는 시청자들의 입맛에 맞았다는 평가다. 나는 이제 밥상을 치우고 한창 설거지를 하는 중이다. 이제 곧 설이 다가온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