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나는 유치원에서 배웠다」미국 프리랜서 작가 로버트 풀검이 쓴 책의 제목이다. 1992년 번역돼 우리나라에서도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어린 시절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일깨워주는 책이다.
그러나 우리 학교에서는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은 잘 가르치지않는 경향이 있다. 컴퓨터교육이 대표적이다.
한글자판도, 영문자판도, 윈도95도, 인터넷도, 홈페이지 제작법도 다 「알아서」 배워야 한다. 고교 졸업과 동시에 대부분 잊어버릴 만큼 쓸모도 없고 무의미한 고등미적분에 로그, 벡타까지 가르치면서 정보지식사회의 생존조건인 컴퓨터는 가르치지 않는다.
최근 서울 강남구 S여고에서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다. 가정시간에 조끼를 떠오라는 숙제를 내줬다. 이 숙제를 받아든 대부분의 학생은 근 한달간을 새벽 1∼2시까지 뜨개질에 매달려야 했다. 보다 못한 어머니들이 대신 해주는 경우도 많았다. 학부모 한정희(韓貞姬·44)씨는 『뜨개질이야 요령만 알면 되고 손수건 하나 정도 떠보면 되는 것』이라며 『그 시간에 컴퓨터를 가르쳤으면 리눅스까지 하고 있을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학교 현장에서는 이런 무의미한 시간의 낭비 속에 컴퓨터가 고철덩어리로 썩어가고 있다. 정부에서 국민 혈세로 컴퓨터를 나눠줘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해 활용이 안되는 것이다. 현재 컴퓨터는 정규 교과목에 아예 없다.
물론 미국도 영국도 싱가포르도 학교에서 따로 컴퓨터를 가르치지는 않는다. 이미 다 알고 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만 활용할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상황이 다르다. 어디에도 정확한 통계가 없어 단정하긴 어렵지만 서울 강북 고교생의 3분의 1 정도는 집에 컴퓨터가 없다. 지방은 사정이 더욱 열악하다. 컴퓨터 없는 학생은 수행평가 과제물을 컴퓨터로 인쇄해 내기 위해 친구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한다.
싱가포르는 현재 전 교과의 30% 가량을 인터넷을 활용해 수업한다. 앞으로 이 비율을 더욱 높일 계획이다.
우리 학교에도 컴퓨터 시간이 있기는 하다. 학교 단위로 교양선택과목으로 하거나 교장 재량 시간에 가르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일주일에 한두시간에 불과하다. 2002년부터 초등학교 5,6학년생에게는 주당 2시간씩, 고등학생에게는 주당 30분씩 가르치기로 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교사들에게도 책임은 있다. 많은 교사들은 교사재교육프로그램이 없다고 불만을 터뜨리지만 정부에서 세금들여 가르쳐주지 않아도 잘 하는 교사도 많다. 정영태(鄭永太·44)교사는 경기 수원 Y고교의 정보화담당교사겸 학교 네트워크관리자이다. 그는 교육계에서 알아주는 「컴퓨터도사」이지만 담당은 국사다. 8년전 워드프로세서를 익히기 위해 컴퓨터를 시작했다. 수업자료를 편하게 축적해 놓을 목적에서 였다. 그러다 컴퓨터에 빠졌다.
그는 작년말 학교 홈페이지를 제자들과 함께 만들었다. 고등학교 홈페이지로서는 대한민국 최고라는 평을 받고 있다. 여기에 들어가면 자료마을에 각종 학습자료가 방대하게 올라 있다. 그는 『교육청에서 선생님들 대상으로 하는 컴퓨터 강좌가 아니더라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배워서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 수업에 활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정보화 교육은 멀리 있지 않다. 학교 컴퓨터 실습실에서 1주일에 딱 한 시간만이라도 스타크래프트를 가지고 놀게 하면 된다.
이광일기자
ki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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